90년대 후반은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활동 영역별로 자리잡는 시기였다. 정치·사회적, 지역적으로 공공성이 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나뉘어 전문성을 강화해 갔다.

95년 단체장 선거를 계기로 자치행정에 밀착한 참여, 감시운동이 본격화했고 환경, 소비자, 교육·청소년, 여성, 문화, 보건·의료 분야와 노동·실업·복지, 통일운동 등으로 분화하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환경운동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전개된 시민운동에 있어 가장 관심을 불러모은 분야였다. 인천은 산업기지화된 서울의 종속도시로 대기, 수질오염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시민적 불만이 높았고, 인천환경운동연합 등 주요 환경단체들은 창립과 때를 같이해 굴업도 핵폐기장,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 등 대형 사건들로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했다.

여성운동은 이 시기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등 법 개정 운동을 통해 양성평등의 사회적 과제를 실현시켜가며 중요한 진전을 이뤘으며, 시민문화운동에 시동을 건 해반문화사랑회는 인천의 정주성 문제를 공론화 하며 인천의 문화와 지역 정체성에 깊이있는 논의의 틀을 마련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시작으로 보건·의료 분야 시민운동을 벌여온 단체들은 경견완 장애를 산재로 인정하기 위해 힘을 모았고 수돗물불소화 운동도 벌여나갔다.

96년 12월26일 여당의 노동법 기습 처리에 한국노총, 민주노총은 사상 최대규모의 총파업으로 맞섰다. 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은 이 과정에서 조직력을 크게 강화시키며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임을 입증했으며, 시민사회단체는 61개가 대거 결합,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인천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북한에서는 95년, 96년 여름 연이어 터진 대홍수와 97년의 가뭄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는 범국민적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연 계기가 됐고, 이로인해 지역의 통일운동과 남북교류도 중대한 전환을 맞게된다.

90년대 후반 교육, 청소년 분야 시민사회운동은 전교조 인천지부, 인천YMCA, 참교육학부모회, 여성의전화 등이 결합한 인천교육개혁연대(교육연대)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교육연대의 모체는 95년 6·27 첫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결성된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기획 공청회에서 교육 관련 공청회를 기획한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는 이해 6월5일 ‘인천교육현안과 개선방향’ 공청회를 열었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민주교수협의회 인천지부, 청소년생활문화마당 내일, 유치원 인천교사모임, 인천부천지구총학생회연합 등 6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후 ‘올바른 교육개혁을 위한 인천지역연대회의’(연대회의)가 결성된다.

- 학운위 출범과 인천교육개혁연대회의

95년 정부의 5·31 교육개혁 조치는 교육개혁의 꽃으로 불린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탄생시키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도시지역에서는 96년 4월까지 학운위를 전면 구성하도록 일정이 잡혔다.

연대회의는 96년 3월15일 구월동 당시 경기은행 본점에서 ‘올바른 학교운영위 구성을 위한 인천시민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모아나갔다. 학운위에 대한 학부모들의 올바른 인식과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자료집 등을 통해 집중적인 홍보에 나섰다.

연대회의에는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유아교육을 위한 인천교사모임, 평화와 참여로가는 시민문화센터 등이 참여했다. 연대회의는 이후 교육 관련 선거 등 현안을 중심으로 조직을 꾸려 지역 교육문제에 대응해갔다.

- 교황식 교육감 선거에 후보 소견발표회

연대회의는 97년 6월 인천시교육감를 선거를 앞두고 ‘얼굴없는 선거’로 알려진 교황식 선거 방식에 본격적인 문제 제기에 나서는 한편 법 개정 전이라도 후보 공개, 소견발표 등 최소한의 검증절차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 때까지 교육감은 후보자 발표없이 소수 교육위원 간 비공개로 선출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누가 출마하는지도 몰랐다. 표 매수 등 비리로 서울시교육감, 전북도교육감이 구속되는 사태도 빚었다.

연대회의는 교육위원회로 하여금 선거일정을 공고하고 교육감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의 신고를 받도록 요구했다. 누가 나오려 하는지는 알아보고, 소견을 발표토록 해 허술한 당시 제도하에서 나마 최소한의 검증절차는 거쳐야한다는 것이었다. 교육위원회는 이에 소견 발표의 기회를 갖도록 절차를 거쳤고, 이후 인천시교육감 선거권은 학운위로 넘어갔다.

- 올바른 교육위원 선거를 위한 인천시민회의

인천지역 학운위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후 행사한 최초의 선거권은 98년 8월 실시된 3대 교육위원 선거였다. 연대회의는 이해 7월 ‘올바른 교육위원 선거를 위한 인천시민회의’를 구성했다. 경실련,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YMCA, 목요회, 인천학교운영위원협의회 등이 참여해 불법 선거운동 감시 및 고발운동을 벌였다.

시민회의는 학교운영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후보들의 불법 선거운동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신고 전화를 개설해 대응하는 한편 후보자를 대상으로 정책질의를 벌여나갔다.부평지역 선거구에서는 시민회의 주관하에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 인천교육개혁연대 발족과 교육감 후보초청 토론회

현안을 중심으로 느슨한 형태로 결합해온 연대회의는 98년 10월 인천교육개혁연대(교육연대)라는 새 명칭으로 확대 개편하고 상시적인 교육개혁 활동을 벌여나갔다. 교육개혁캠페인, 학교운영위원 교육, 교육개혁을 위한 단체간 협력 사업, 교육개혁 관련 행사의 개최 등을 주요 사업으로 했다.

YMCA, YWCA,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경실련, 부루나 청소년회관, 유아교육을 위한 인천교사모임, 평화와 참여로가는 인천연대, 여성의전화 등 처음 10개 단체로 출발해 이후 14개 단체가 참여했다.

교육연대는 99년 한해 인천일보 특집면을 통해 매주 1차례 기자들과 공동 필진으로 참여하는, ‘새 학교문화 창조’를 위한 교육개혁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해 10월에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동아리 활동에 주목하고 민예총과 함께 인천대에서 각 학교단위로 참가하는 청소년 동아리축제를 열어 주목받았다.

2000년 3월 ‘인천 공교육의 현실 진단’을 주제로 중앙도서관에서 제1회 ‘인천교육사랑방’을 열기 시작했고, 7월에는 북구도서관에서 ‘교직발전종합방안 토론회’를, 11월에는 부평구청에서 ‘사립학교법 개정과 민주적 사학 정책을 위한 토론회’를 여는 등 지역교육현안에 대해 점검하고 정책 대안을 모색했다.

2001년 3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학부모·교사의식 설문조사 결과 및 토론회를 열어 시민의 참여와 공정한 선거에 주력했다. 교육연대는 학운위가 선출하는 2001년, 2005년 교육감 선거와 2006년 교육위원 선거에서 지역 교육단체, 언론사들과 공동으로 후보 초청 합동토론회를 여는 등 후보 초청 토론회를 정례화했다.

- YMCA, YWCA, ‘내일’의 청소년운동

인천YMCA는 청소년음악회, 청소년길거리농구대회, 청소년문화광장 등 사업을 통해 90년대 새로운 청소년 문화를 찾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년의식구조 및 생활실태조사, 청소년인쇄 및 정보매체 모니터링 등 청소년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며 전문성을 갖춰나갔다.

인천YWCA는 청소년캠프, 청소년문화마당, 청소년 자연농장 활동 및 어린이 갯벌캠프 등을 운영하며 청소년지도에 노력을 기울였고, 향락적인 사회문화의 침투를 경계하며 건전 가족놀이 마당을 열어나갔다.

청소년 생활문화마당 내일은 94년 3월 청소년 문화란 찾아볼 수 없었던 인천에서 새로운 청소년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소명의식으로 발족했다. 홍현웅 신부가 초대 대표로 활동했다. 방학을 이용한 청소년문화학교를 개설해 매년 ‘해를캐는 아이들’ 행사를 열었고 고등학교 동아리결성을 지원했다.

범람하는 불법 향락 문화, 치열한 입시문화속에 청소년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청소년인권영화제를 개최했다. 2006년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YMCA와 YWCA, 내일, 흥사단 인천지부, (재)인천가톨릭청소년회,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등 12개 청소년단체는 2001년 인천시청소년단체협의회를 구성했고, 2004년부터 문학유스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 학교 도서관 살리기

2000년 들어 고사 상태에 놓였던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해 인천에선 도서관 담당교사들로 구성된 ‘학교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중·고교 도서부 학생들이 실태조사, 캠페인을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가 2000년 11월 창립됐다.

인천에서의 이 운동은 2001년 11월 해반문화사랑회가 ‘학교도서관 이대로 놔 둘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기점으로 본격화 했다. 2002년 3월 학교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인천도서부연합(학생), YMCA, 해반문화사랑회 등 6개 단체가 ‘학교도서관살리기 인천시민모임’을 결성했다.

해반문화사랑회는 이해 학부모 사서도우미 교육등의 사업을 벌였다. 교육부는 이해 8월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을 수립, 이듬해부터 5개년 사업에 돌입했다. 학교도서관살리기는 시민운동의 정책적 요구가 당국에 의해 온전히 수용된 사례였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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