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음놓고 기댈 수 있는 누나와 형.
새벽 한 두시에도 국내는 물론 세계 각 국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시도 휴대폰을 꺼놓아서는 안되는 사람.
서른여덟 동갑내기인 김순화·윤승규 부부(인천시 부평구 십정동)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외국인용 식재료점은 과외의 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십정시장에서 ‘아시안푸드’라는 음식 재료점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
이곳은 중국은 물론,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 몽골,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각 나라 사람들이 찾는 제각각의 식재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인천에 몇 안되는 전문 매장이다.

한국인들은 그 강한 향과 독특한 맛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각종 향신료에서부터 야채류, 밀가루류, 통조림류, 주류, 간식류, 양념류가 매장 가득하다.

인천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 고객이다보니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여느 상점들보다 매상이 더 많지는 않건만 부부의 얼굴에 평온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온다.

“가게 일은 어떻게 보면 과외 일이예요. 물건 파는 것보다 단골들 일 봐주기가 더 바쁜 걸요.” 정감있는 강원도 억양에 웃음을 섞어 말 문을 여는 윤씨. 곁에 앉았던 부인 김씨가 ‘피식’ 웃음을 보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 가족
“며칠 전에도 인천법원에 갔다 왔어요. 몽골 친구가 3개월째 재판도 못받고 있어서…. 사소한 일이었는데 몽골인 통역을 구하기가 어려워 재판을 자꾸 늦추니 걱정이네요. 그 친구를 만나서 돌아가는 상황도 설명해줘야죠.”
부인 김씨의 말에 그들 내외의 삶이 궁금해졌다.

“조선족인 집사람은 20년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11년전 저와 결혼했어요. 중국에 있을 때 조리사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아내는 이 자리에서 음식점을 열었고 저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평범하게 살던 저희가 지금처럼 외국인 노동자들과 깊은 인연이 된 것은 4년전 업종을 바꿔 외국인용 식재료점을 열면서부터 였지요.”

가게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하면서 말로만 듣던 그들의 어렵고도 처절한 삶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나야 물건만 팔면 그만이지’ 하는 이기심 대신 ‘가족과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다치고 고생하며 돈을 벌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이 너무 안됐다’는 인간애가 저절로 생겼다. 그들도 집에 가면 소중한 가장이요, 어머니요, 누나, 형인데….

“형, 이거 잘 썼어요.” 한 외국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스스럼없이 윤씨를 형이라 부르며 봉투를 건네준다. ‘그 일은 잘 해결됐어? 다행이네.’ 윤씨 역시 자연스럽다.

카운터 한 켠에 놓여있는 상자속에 수첩 같은 것이 빼곡하다. “외상 장부예요. 우리 가게 고객들 것인데,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모르지만, 또 갚지 않고 가버릴 수도 있지만 달라는 대로 외상을 줘요. 하지만 대부분 월급이 나오면 고마웠다며 제일 먼저 찾아와 갚고, 고국에 가서는 감사 편지를 보내곤 해요.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착하고 정직합니다. 우리가 먼저 믿음을 주면 그들은 배반하지 않아요.”

지난 수 년간 가게 일보다 고객들 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정신없었다는 김씨. 중국어는 기본에 각국 말을 조금씩 하는데다 애처로운 일은 그냥 넘기지 못하는 김씨의 존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무슨 일이든 상담하고 부탁할 수 있는 ‘기둥’과 같았다.

‘집이 그리워 술을 과하게 마셨다가 한국인과 싸움이 붙어 경찰서로 잡혀가게 됐어요.’ ‘돈이 너무 없어 남의 물건에 조금 손을 댔는데 그만….’ ‘불법체류 상태라서 병원에 못가는데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요.’ ‘합의금을 물어줄 돈이 없어요.’ ‘새벽까지 야근을 했는데 회사에서 수당을 전혀 주지 않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런 저런 안타까운 호소를 듣느라 김씨의 휴대폰은 365일 항상 열려있다. 부부는 명절때도 그들을 위해 가게를 연다.

“남들은 그래요. 장삿속으로 저렇게 외국인들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들로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 또 받은 적도 없어요. 오히려 저희는 술에 취해 또 술을 사러온 외국인들을 그냥 돌려보내요. 내일 일 나가야 하는데 더 마시면 안돼잖아요. 얼마전에는 급히 합의금 250만원이 필요한 이에게 돈을 보내줬어요. 저희 역시 부자가 아니지만, 그 돈이 없으면 그들은 도와줄 이 전혀 없는 타국에서 감옥신세를 지는 걸요.”

경찰서, 법원, 병원, 제조회사, 출입국관리사무소, 노동청, 보호소 등으로 쫓아다니며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하다보니 모르는 것이 없는 박사가 됐다며 부부는 웃는다.

#숨어있는 민간외교사절
“얼마전 고향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친구를 인천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왔어요. 비행기표만 끊어서 자기 나라로 여행을 오래요. 나머지는 다 책임진다고.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이들이 참 많아요. 말만 들어도 고맙죠 뭐.”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는 세계 각 국에 뿌려져 있을 것이라며 농담을 하는 김씨.
실제 인천에 있다 돌아간 외국인 다수는 또 다른 한국행 친구에게 김씨 내외의 연락처를 알려줘 새로운 인연이 되곤 한다. ‘잊지 말라’며 그들이 가게의 카운터 유리판 밑에 놓고 간 10개국이 넘는 각 나라의 지폐가 민간외교사절로 한 몫을 하고 있는 부부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 다른 변신을 준비중
“동암역 인근에 무슬림들을 위한 음식점을 열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여유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야지요.”
지난 한 해 내외는 ‘소츠래’(중국어로 포장마차라는 의미)라는 할랄(halael;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고기로, 무슬림들은 이 고기만 먹음) 음식점도 함께 운영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의 기도처 근처로, 마땅히 할랄음식을 먹을 장소를 찾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더 없는 모임장소였다.
그러다 건물주와 의견차로 곧 문을 닫아 지금 새 장소를 물색중이다.
“무슨 거창한 꿈이나 계획은 없어요. 인천을 찾은 외국인들이 저희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식당이 친구들과 담소하며 그들 고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따듯한 곳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모두 좀 더 인정있게 그들을 대했으면 좋겠어요.”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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