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현대화와 급속한 개발의 물결 속에 외형적 ‘경제성장’이라는 괄목할만한 큰 틀을 얻었지만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린 것들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성장과 발전이 먼저 주목되는 화두이고 보니 자연 그 외연적으로 보이는 변화에 급급하여 현재의 토대가 된 역사적 기반이나 그 소산물들에 대해 배려할 여지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케 해주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해 새삼 관심을 집중시키고는 있지만 이미 멸실되어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흔적만 남은 몇 안되는 자료를 통해 시대를 거슬러 그 단서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보니,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옛 지명을 찾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지명의 범주는 광범위하여 좁게는 마을이나 산· 하천·고개·도로 이름에서부터 넓게는 시·도·국가 이름에 이르기까지 땅에 기반을 둔 모든 것이 해당되므로 그 분류도 자연·법제·경제·문화지명 등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지명은 지역의 여건이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당시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무형의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지명자체가 그 지역의 정체성이었고 역사였던 것이다. 일제가 한국 땅에 식민지를 구축하면서 우리 고유의 지명을 해체하고 자기들식의 지명으로 변조한 것은 지명이 갖는 민족정서와 의미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단위 아파트 숲으로 변모하고 있는 도시에tj 생활하면서 지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재조명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나아가 도시개발과 함께 매립되고 조성된 지역까지 지명을 부여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이다. 왜냐하면 지명이라는 문화유산을 통해 역사적 근원을 찾기도 해야 하지만 지금 정해지는 이 지명들이 훗날 이 시대를 증거해 줄 또 다른 문화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해야 할 것은 늘어나는 인구와 행정지역마다 적용할 수 있는 역사적 지명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획일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방향이나 숫자 개념으로 이름이 부여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자가 주는 난해함이나 어려움 때문에 부르기 편한 순한글식 이름을 짓기도 한다. 한자를 한글로 풀어 그 의미를 전달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글이름이 쉽고 용이하다는 것 때문에 무조건 한글로만 지명을 정하다보면 훗날 지역의 역사를 지명을 통해 찾아보고자 할 때 그 의미를 전달치 못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현재 경제특구를 비롯한 각 군·구마다 새롭게 개발된 지역에 지역인의 정서와 역사성이 묻어나는 도로명 부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인천인들의 관심 속에서 지역특성과 지역정서가 반영되는 이름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나, 일정한 원칙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왕에 조성된 지역에 재건축되거나 새롭게 정비된 도로나 동명(洞名), 교차로, 산, 하천, 다리 등은 역사적인 의미를 찾되, 이미 사용하고 있는 역사적 지명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이름을 부여하여 먼 훗날에도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길이나 골목길, 새로 매립된 지역 등은 그 주변의 특성에 맞는 여러 가지 한글이름을 짓되, 지역인들이 함께 지역을 답사하여 특성을 찾아보는 자체적인‘지역알기답사’프로그램 등을 통해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므로 동(洞)이나 군·구에서부터 소박하나마 지역에 얽힌 옛 이야기를 찾아서 정리하고 특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서울의 명동과 신촌거리, 일본의 긴좌(銀座)나 록본기(六本木)거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인천에 싸리재나 참외전거리, 신포시장이 있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천에는 정감있고 지역의 특성과 역사가 묻어나는 옛 지명들이 많다. 단지 그동안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보니 잊혀져 있었을 따름이다. 싸리재, 배다리, 터진개, 큰 우물거리, 참외전거리, 칠통마당, 모랫말, 무네미, 괭이부리, 수문통, 대지기, 숙골, 도마다리, 번지기나루, 개건너, 쇠뿔고개, 독갑다리, 먼어금 등등 조금만 찾아봐도 재미있는 지명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더구나 그 지명의 유래가 다양하여 이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인천을 알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찾아야 할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남겨야 할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명도 문화재처럼 현재의 우리만이 아니라 먼 훗날 후손들에게 계승되어야 하는 문화유산인만큼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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