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파랗고 색색의 꽃과 초록빛의 나무들이 싱그러운 6월초의 날씨로는 그만이다.

춘향 골의 특별하지 않은 소박한 정경들이 향수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배산임수의 탁월한 자리에서 태어난 최명희가 창작한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그녀가 부대끼며 살았고 가슴에 혼불의 부싯돌을 지폈을 생가를 찾았다. 큰 것만을 지향하는 요즘 풍조에는 걸맞지 않은 졸졸졸 세숫물 정도의 물이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최명희의 혼을 따라 걷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을 훌쩍 날아온 듯 황토 흙을 으깨 만든 돌 담집에 옹기종기 매달린 앵두나무의 조화가 어머니의 태안에 있는 듯 평화롭다.

소문난 관광지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 곳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좋다. 동네 부녀회에서 마련한 직접 재배한 쌈과 막걸리 한 잔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근사한 일류식당의 세련된 서비스를 받은 것보다 오히려 흡족하다. 이런 것이 문학 기행만의 특별한 매력이지 싶다.

최명희 문학관의 다실에서 베푸는 차 한 잔을 놓고 그의 생애를 듣는다. 그녀는 한 작품을 무려 17년여 동안이나 매달려 저작을 위해 그의 인생 삼분의 일을 아낌없이 불살랐다. 그야말로 혼 불로 창작한 작품이 아니던가. 하여 혼불은 아마도 그녀 자신이었으리라. 단 한순간도 끝맺음으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 채 미완성의 기분으로 늘 쫓겼을 심정을 새내기 작가의 마음으로 가늠할 때 어찌 그리 힘겨운 병이 안 걸리랴 싶다. 혼 불 하나와 목숨을 맞바꾼 셈이리라.

차의 알싸한 향이 혀끝에 퍼지듯 가슴에 아릿한 감정이 퍼져나간다. 고개 들어 창문틀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화두 하나를 챙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남은 생은 무엇을 위해 혼을 사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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