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과 98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참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것은 지방의회의 행태나 위상에 대한 실망,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치단체의 역할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시민운동이 더 이상 자치단체나 정부 기관에 대해 대립적 위치에 있는 것만은 아니며, 참여속에 동반자적 관계가 요구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비계급적, 합법적 운동을 지향하는 시민운동으로서 ‘저항형’ 만 아니라, 공익차원의 제도 개선을 위한 ‘요구형’과 ‘참여형’, ‘자원형’으로 활동 범위를 확대해야한다는 것이었다.

97년 들어 인천시는 관변단체 만이 아닌, 공모를 통해 ‘건전’ 시민단체의 사업에도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해 3월에는 시민단체와 인천시, 기업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인천의제21이 출범했다.

시민단체들은 95년 첫 동시지방선거 후 의정활동에 대한 감시운동에 들어갔다.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던 자치단체에 대한 제도 개선의 요구와, 행정·예산감시 운동은 98년 6월 2기 단체장 선거를 전후로 본격화했다. 이는 시장 공약이행도 조사, 시민감사청구 조례제정, 구청장 판공비 공개, 인천시 금고(은행)의 투명한 선정을 위한 공개입찰 및 조례제정 운동 등의 형태로 표출됐다.




(시민단체들은 90년대 후반 들어 서명운동을 통해 주민참여의 길을 넓히는 지방자치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의정감시운동

1991년 부활된 지방의회에 시민들은 지방 행정과 정치 변화를 기대했으나, 중앙 정치에의 예속, 지방 의원의 경험과 전문성, 자질 부족 등이 나타나면서 실망과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다 이권, 인사 개입 등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는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의정에 대한 참여와 감시 활동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 의원 해외활동 규정 제정 청원

지방의원의 관광 위주의 해외연수는 초대 의회때 부터 세금 유용이라는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인천시의회는 94년 4월과 5월 각각 모스코바, 유럽 및 미국, 캐나다 연수계획을 세워놓았다.

인천경실련은 이때 의회를 대상으로 연수계획의 전면 조정을 요구하는 한편, 같은해 7월 해외활동의 범위와 제한, 활동결과 보고서의 제출을 의무화하는 규정 제정을 청원하면서 여론을 환기시켰다.

97년 9월에는 옹진군의회에 같은 규정 제정을 청원했다. 군의회는 다음달 이를 원안통과시켰다.

- 2기 의회 YMCA/YWCA 의정지기단 발족

95년 9월28일 인천YMCA는 단원 21명으로 의정지기단(당시 시정참여단)을 발족시켰다. 첫 의정참관 및 모니터링은 이해 10월11일 개회된 인천시의회 38회 임시회였다.

상임위원회 참관을 활동을 시작한 의정지기단 회원들은 현장시찰, 의사록 분석 등을 통해 의정활동 분석자료집을 발간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출석과 질의내용 청원소개, 조례안 상정 등 기준표에 의해 의원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활동 내용, 문제점, 우수의원 등을 발표해왔다.

인천YWCA 의정지기단도 96년 6월25일 20명의 단원으로 출범했다. 매해 공모를 통해 단원을 모집하고 교육과 훈련을 거쳐 3~4명씩 1개조로 교대로 방청했다. 의원 발언 내용을 기록, 의정지기 활동보고서를 작성하고 소식지를 발행했다.

96년 3월 출범한 남동시민모임은 같은해 11월 남동구의회 방청단 출범시켰다. 같은해 12월18일 첫 본회의 방청을 시작했고, 26일에는 구의원의 적절치 못한 발언에 대해 성명을 통해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 3기 의회 ‘인천연대’ 의정지기단

‘평화와 참여로가는 인천연대’는 99년 9월 일상적 생활을 통한 참여민주주의 실천을 표방하며 의정지기단을 발족시켰다. 9월4일 ‘청년의정지기학교’를 열고 청년, 주부, 시민 등 65명의 단원이 시의회 임시회를 방청했다.

인천연대는 의정단을 발족시키는 자리서 시의회 뿐 아니라 구의회도 대상으로 하여 5개 구의정지기단을 구성했다. 의정지기단은 11월25일 구, 시의회 정기회 방청을 시작으로 분석, 평가활동을 개시했다.

- 교육위원회 참관단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는 98년 5월 최초로 교육위원회 참관단을 구성하여 8개월간 활동했다.

참관단은 학교운영위원이 처음 선출, 98년 9월 출범한 제3기 교육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10월 정기회에서 집중적인 참관 활동을 폈다. 참관단은 3주간에 걸쳐 본회의와 함께 3, 4명씩 나뉘어 소위원회까지 참관하고 99년 1월 자료집을 발간했다.

참관단은 총평을 통해 “기초발언이 많고 문제제기나 대안제시가 적어 실속있는 발언이 적었고, 현장의 문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역할이 소홀했다”고 평가했다.

- 인천여성의 전화 시의회 속기록 분석

인천여성의 전화는 95년 5월, 제2기 의원선거를 앞두고 1기 인천시의회 의원들의 회의속기록 중 여성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분석하는 작업을 벌인 후 자료집을 통해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를 통해 여성의 전화는 인천시 여성정책이 당시까지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밝힌다. 의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인식이 희박하다는 점과 여성문제는 의제로서 채택하는데 비중이 미미하고 그 논의방향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지자체 감시운동

- 공약이행도조사
정책선거를 주창해온 인천경실련은 96년 5월 인천시장 공약이행도 조사사업을 개시했다. 97년 들어 인천시로부터 이행 상황을 보고 받고 부분적인 실사를 벌여 이해 6월 첫 자료집을 냈다.




(인천경실련은 97년 인천시장 공약이행도 조사를 벌여 자료집을 낸 이래, 현재까지 공약이행도 조사를 발표해오고 있다.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본격적인 공약 이행조사 활동은 ‘민선1기 인천시장 공약이행도 조사단’이 구성된 98년 6월부터다. 조사단은 4차례의 조사 및 회의와 검토과정을 거쳐 8월28일 결과를 발표했다.

경실련은 민선2기 때부터는 1 ~ 3주년 단위로 공약이행도를 발표했다. 민선2기 1주년 이행도는 99년 7월, 3주년 이행도는 2001년 6월 발표됐다.

- 시민감사청구 조례제정운동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90년대, 지역 시민사회는 중앙의 권한 위임이 부진하고 주민들의 직,간접적인 참여 수단도 제약당하고 있다는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 등 각종 주민참여제도 개선은 논의에 그쳤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98년 6월부터 시민감사청구조례 제정운동에 본격 나섰다. 전문가들과 함께 조례시안을 작성하고 11월 인천지역 주요 인사 212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시민감사청구조례안을 청원했다.

지자체의 위법·부당한 행정행위를 감시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제도개선 운동의 시발이었다. 시의회는 시민감사청구조례안을 통과시키고 인천시는 99년 3월 시행에 들어갔다.

- 구청장 판공비 공개운동

‘인천연대’는 99년 1월21일 인천시 8개 구청 앞으로 각 구청장에게 집행된 예산사용 내역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서를 보냈다.

기관 운영추진비나 업무추진비, 대민활동비, 특수활동비 등 구청장 명의로 집행된 예산의 내역과 영수증의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만해도 베일에 가려져 있고 거론도 금기시됐던 단체장들의 판공비가 술값 등으로 부당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었다.

그러나 인천지역 8개 구 가운데 동구, 중구만 집행내역을 공개하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인천연대는 곧바로 법원에 판공비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같은해 11월5일 인천지법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인천지법의 승소 판결의 영향으로 서울시는 11월25일 시장 판공비를 공약이행 차원에서 전격 공개했고 이듬해 6월에는 전국의 각지역 34개 시민단체가 판공비공개운동 전국네트워크를 구성, 활동함으로서 단체장들이 판공비를 스스로 공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 시금고 조례제정운동

지자체에 대한 예산감시운동은 수십년간 수의계약으로 지정되온 인천시 시금고의 투명한 운영에 모아졌다. 2기 시의회 신맹순 의원등은 인천시의 자금관리 개선을 위한 조례제정 등 공론화에 나섰고 인천경실련은 토론회를 통해 특정은행의 시 금고 독점 및 수의계약에 따른 폐해를 지적하고 공개입찰방식을 주장했다.

IMF 사태와 경기은행 퇴출에따른 지급불능 사태에 자금관리의 핵이라 할 금고은행 선정에 관심이 증폭됐다. 인천시는 99년 11월 시금고 운영조례를 제정하고 공개경쟁방식의 선정을 명문화했다.

● 자치단체와 시민단체와 연합

- 인천의제21 실천협의회

1992년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의안된 의제21에 대해 인천에서는 1996년 중반부터 논의가 시작돼 1997년 3월 27일 ‘인천의제21 추진협의회’ 를 결성했다.

협의회는 곧 도시계획, 교통, 에너지, 문화, 복지, 생태, 대기, 물환경, 폐기물 분과 등 9개의 분과로 조직을 구성했다. 목요회는 도시계획분과 간사단체로, 경실련은 물환경분과위원회 간사단체로 참여했다. 인천의제21은 98년 10월22일 선포됐다.

협의회는 99년6월 시민,환경단체들과 해안선 철조망을 철거하기 위한 시민운동에 나서 인천시민바다찾기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는 남구 협의회가 2002년 12월 먼저 창립됐고 이어 모든 군, 구청이 의제21을 구성했다.

-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인천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

정부가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할 만큼 쓰레기문제가 큰 고비를 맞고있던 98년 4월 쓰시협은 민, 관 협력 체제로 구성됐다. 환경부가 법제화를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2005년부터 매립을 금지키로 하는 등 음식물쓰레기 문제는 특히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서울에서는 국무총리와 환경단체 대표자간 간담회가 97년 8월 이뤄져 쓰레기대책협의회 구성이 합의됐다. 인천에서는 98년 2월 준비모임에서 지역협의회 구성이 제안돼 4월17일 14개 시민,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쓰시협’을 발족시켰다.

참여단체는 가톨릭환경연대, 남동시민모임, 부평생활자치실천시민협의회, 부평생협,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인천YMCA, 인천YWCA, 음식물재활용인천시민운동협의회, 인천경실련, 인천녹색연합, 인천사랑여성모임, 인천환경운동연합, 청량산살리기 시민모임, 푸른생협 등이다.

쓰시협은 포장쓰레기 감량, 1회용품 사용억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분리수거), 재활용율 높이기, 사업장쓰레기 줄이기, 쓰레기 행정감시 시스템 구축을 핵심 과제로 발표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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