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이사장. 단체장의 이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그는 사실 ‘8월의 크리스마스’ ‘살인의 추억’ ‘범죄의 재구성’ 등을 만든 프로듀서로 유명한 인물.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제작자 가운데 한명으로 영화사 ‘싸이더스FNH’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요즘 한국영화 최대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요즘의 한국영화를 늑대소년이라고 비유한다. 장난으로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진짜 늑대가 왔을 때는 정작 마을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늑대소년. 한국영화는 지금 늑대에게 잡혀먹힐 판이라는 것이다.

- 한국영화 위기론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영화판 들어오고 나서 느낀 위기의식 가운데 요즘 느끼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한국영화는 앞으로 2~3년은 바짝 힘들 것이다.

-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해외시장이 급격하게 몰락했고 이로 인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과다하게들 올린 제작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다 산별노조까지 등장했다.

지난 해가 피크였는데 영화가 120편 가까이 제작될 만큼 공급이 과잉됐고 부가판권 시장은 거의 죽어있는 상태다. 예전에는 위기의 징후가 한가지씩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다.

-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갑자기가 아니다. 자만했다. 진작에 해외시장을 다변화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몇 년간 일본에만 치중한데다 나가는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할 때 그 성장의 구조 안에서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들이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국영화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달사, 그 기형적인 구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계도 정상적인 자본축적의 과정을 밟지 않고 흔히들 말하는 백 도어, 곧 우회상장에만 매달렸다. 모두들 머니 게임의 희생자였다.

- 영화계의 위기의식은 어느 정도인가?

▲급격하게 냉각돼 있다. 많은 제작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돈이 말랐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투자자본의 위축, 아니 경색때문이다. 영화산업이 유지되려면 흥행타율이 최소한 3할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영화는 현재 1할5푼이 되지 않는다. 이걸 투자율로 봐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나 투자율이라는 것이 연 10%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근데 국내 영화계의 투자율은 10%가 되지 않는다. 지금 문제가 아주 심각한 상태다.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BEP를 맞출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또 그럴려면 제작비 사이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스타들의 몸값을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인건비 전체를 줄여야 한다. 여기에다 제 관계비용, 그러니까 마케팅 비용도 다운사이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제작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돈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비용의 정량화, 수치화를 이뤄내겠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게 되면 제작비의 과다한 누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비용대비 예상수익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한국영화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불안해 보인다.

▲위기가 기회인 법이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모멘텀일 수 있다. 한국영화의 진정한 힘은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석하고, 올바른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 인력들, 고급의 인적자원이 많다는데 있다. 난 그점을 믿고, 그점에서 한국영화의 진정한 희망을 본다.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데.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나 스스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과거에 할리우드나 유럽영화계, 일본영화계가 겪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역사란,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라는 E.H.카의 말을 새삼 실감한다. 문제를 푸는 방법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역으로 배워 나가고 있다.

오동진 영화전문기자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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