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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

오랜만에 김포에 있는 문수산성에 올랐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물줄기가 뒤섞이며 흘러드는 염하수로 어귀의 물결은 여전히 태평하다. 산성 장수대에 날리는 상큼한 바람에 한여름 더위에 지쳐 탈진한 육신이 다시 소생하며, 멀리 북한산까지 터지는 시야에, 나태하던 눈빛이 생기를 찾는다. 한강 너머 누워있는,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곳, 황해도 개풍 땅까지도 한가로운, 초가을의 정취에 잠시 넋을 잃는다. 얼마나 아름다운 강산인가.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후 아침 신문을 읽어나가다가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물론 이리저리 사전에 듣고 있던 사건들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활자 매체로 재차 확인하는 현실의 무게가 견디기에 힘겹다.

내우외환, 사면초가, 백척간두, 풍전등화…, 급박한 위기를 표현하는 이 모든 수사들이 오늘 이 나라가 처한 지경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싶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외교, 국방…, 어디 편편한 곳이 한 곳이라도 보이질 않는다.

이제 북쪽은 핵개발을 완성하였다고 선언하였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대북 접근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고 했다. 대화로 푼다든지 개성공단 재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든지 하다가 갑작스레 레드라인과 엄정 대처를 소리치기도 하고 종잡기 어려운 대응으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대통령이 최고 수준의 엄정한 대처를 명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북측의 핵개발이 아직 완성된 단계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토를 단다.

마침내 주한 미군의 사령관이 한국 정부의 이런 자세에 대해 전례 없는 짜증을 터뜨리기까지에 이르렀고, 청와대는 스스로 설정한 레드라인에 대해서도 어떤 기가 막힌 대응 전략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이제는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이 그 내용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여기에 더해, 노련한 장사꾼이라는 미국 대통령은 하필 이 시기에 한미 간의 FTA를 없는 것으로 하는 협의를 시작하자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그는 이제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우선적으로 일본의 총리와 대화할 뿐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빗겨가는 것 같고, 번번이 김정은에게 자신의 잔칫날마다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중국의 시진핑은 여전히 한국의 사드에만 종주먹을 댄다.

안보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생계를 책임져왔던 해운, 조선, 자동차, 심지어 철강까지, 특단의 새로운 활로를 열지 않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규가 시작된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이 정부에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부문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마침내 삼성전자 사장의 울먹이는 호소가 터져 나오고, 현대는 중국에서 자동차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의 자동차 산업이 과연 자율주행자동차의 세계시장에까지 진입할 수 있기는 할 것인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정성들여 들어 주는 이가 없다.

이 정부의 모든 능력이, 죄다 들춰내서 청산하고, 세금 털어서 나누어주고, 권력을 바꾸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형성되었던 조직의 질서들은 모두 요동을 치지만 그 정답이 무엇인지, 향하는 길을 알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아무도 믿음직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아이들도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눈만 굴리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해 주어야 할 공영방송들은 권력이 바뀔 때마다 거듭하던 파찰음에 빠져 자신들이 신물 나는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더니 아뿔싸, 마침내, 이 사회의 마지막 평형수인 줄만 알았던 판사님까지 나서서 “재판은 정치일 수 있다”라는 폭탄선언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이제 이 나라 정치의 잘잘못은 누가 재판하여야 하나.

이런 때,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어느 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공직자의 발언과 식견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야당에서라도 속 시원하고 논리정연한 대국민 담화나 그 흔한 논평이라도 한 편 나와야 한다 싶지만 그조차도 없다.

좋다.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고 달려온 길이 잘못인 걸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되짚어 바른 길로 다시 가야 한다는 데에 이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러한 교정을 위해서는 기왕의 잘못을 저지른 논리보다 몇 배 더욱 치열한 이성이 작동되어야 하고, 당위에 대한 친절한 설득이 있어야 한다.

훈련에 참가한 미 공군에게는 북측을 자극할 비행을 삼가달라고 요구하고 당초 계획되었던 전승기념식조차 스스로 대폭 축소하면서, 운전대 잡고 대화로 풀겠다더니, 이제 와서야 내 땅을 당신들이 지켜달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진실하게 들어 줄 것인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이 땅에서는 영육의 안녕을 산바람에게 밖에는 의지할 수 없는 것인가./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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