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병(55) 시인이 최근 시집 ‘큰 새를 꿈꾸다’(다인아트 출간 )를 냈다. ‘중독된 땅에서’ 이후 5년 만이다.
90년대초 인천에서 살다 수원으로 ‘귀향’을 했지만 작품만은 꼭 인천에서 출간하겠다는 시인의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무엇이 되랴? /무엇이 되랴? //지금의 나에겐 이름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이름대신 불러주는 어둠으로 남아 /끊임없이 /또다른 어둠을 베혀 /밤마다 캄캄한 그리움으로 떠돌다가는 /새벽이면 햇빛에 부서지는 虛無일 뿐(‘無明’중에서, ‘세계의 문학’ 1978 봄호.)

채성병의 데뷔 작품이다. 중앙문단에 이름을 올려놨지만, 정작 서울출신인 그가 둥지를 튼 곳은 인천이었다. 시인은 80년대초 신포동에 음악카페 ‘시랑(詩廊)’을 열었고, 이내 그곳은 문화·예술인들의 캠프가 됐다.

김윤식 시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0평도 안된 작은 가게 한편에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등에서 나온 시집들을 죽 꽂아놓고, 스피커가 좋은 전축의 볼륨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리거나 하는 집이었다. 아내는 커피를 팔고 사내는 술을 마시기만 했다. 그리고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긴 널빤지 의자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를 쓰곤 했다.”

간세포가 망가졌다고? /혈소판이 망가졌다고? /그게 무슨 상관 /아아,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 (‘사랑의 이름으로’ 중)

시집의 첫 장을 넘기면 “이 詩集을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친다”라고 부기되어 있고 시집 곳곳에 아내를 위한 연가풍의 노래가 있다. ‘사랑의 이름으로’를 비롯해 ‘아버지’ ‘가족’ ‘4월 有無’ ‘별을 찾아서’ 등의 시편은, 시 쓰는 일과 술 먹는 것 이외에는 해본 적 없는 시인의 가족(정)에 대한 일종의 사과문이다.

이 시집은 병마와의 고투 속에서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의지가 넉넉하게 그려져 있다. 간혹 체념의 정서가 내포된 시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표제시인 ‘큰 새를 꿈꾸다’와 함께 묶인 ‘변신’ ‘길’ ‘다시 태어난 삶을 위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삶을 위하여’ 등의 시에서는 “시를 밥이라 생각하고 싶다”며 시인으로의 귀환의지를 나타낸다.

죽음은 서서히 뜻밖에도 느리게 찾아오리라 /나는 아직 내 별을 찾지 못했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는 찾게 되리라는 것을(‘별을 찾아서’ 중)

채성병을 기억하는 인천의 지인들은 시인의 '순전한 성정'을 그리워한다.

“지금은 사라진 ‘미미집’ ‘신포주점’에 정확히 두시가 되면 출근해 혼자 술을 마셨댔어요. 그러다 지인이 들어오면 어린애처럼 반가워하며 자리를 내주고 술값을 대신 내라고 하지만 그 상황을 마다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남을 욕하거나 시말고는 그 어떤 것도 탐하고 하지 않은 분입니다.” 시집을 묶은 다인아트 유봉희 대표의 말이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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