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이 말은 교육이 정치적 성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인천교육계에 몸담고 있다면 조금은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전․현직 교육감이 법정에 서는 사상초유의 사태 앞에서 ‘교육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는 말이 ‘뇌물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는 우스갯소리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에 패한 보수 성향의 나근형 전 인천시교육감이 뇌물수수죄로 1년6개월을 복역하고 지난 8월 7일 출소한지 꼬박 11일되는 날 검찰은 이 교육감의 집무실과 관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청연 교육감이 3억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에서 였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뇌물사건 망령에 인천 교육계가 수렁에 빠졌다.

‘뇌물’하면 나 전 교육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 전 교육감은 2011년∼2013년 시교육청 직원 5명으로부터 해외출장과 명절 휴가비 명목 등으로 1천600여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뇌물에 발목 잡힌 이청연 교육감

이 교육감의 상황은 나 전 교육감의 상황보다 나을 게 없는 실정이다.

이 교육감은 지난해 6월 인천의 한 학교법인 소속 고등학교 2곳의 신축 이전공사 시공권을 넘기는 대가로 건설업체 이사(57) 등으로부터 총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4년 2∼3월 교육감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선거홍보물 제작업자와 유세차량업자로부터 홍보물 등을 계약하는 댓가로 총 1억2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쟁점이 되고 있는 3억원 뇌물혐의와 관련, 이 돈이 2014년 교육감 선거 이후 이 교육감의 선거 빚을 갚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선거운동과 관련된 업체들은 한 번 선거를 치르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업체로 선정되기 어려워 경쟁이 치열하다”며 “후보자측이 부정정치자금 기부를 요구해도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은 이런 업체들의 상황을 이용해 업체들에게 물품을 기부 받고도 이중 선거홍보물업자에게는 정당하게 계약한 대금 중 3천만원을 주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이 교육감이 당시 선거 후보자 신분으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만큼 지방교육자치에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선거자금 부족에서 시작된 범죄…이 교육감 채무독촉 시달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이 교육감의 선거자금 부족에서 시작된 범죄라고 보고 있다.

교육감 선거 전 재산이 '-1억원'인 이 교육감이 무리하게 선거를 진행하면서 부정하게 정치자금을 받고 거액의 선거 빚을 갚기 위해 또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이다. 선거 이후 이 교육감의 채무는 4억5천만원으로 불었다.

이후 "돈을 갚으라"는 독촉이 계속됐다. 하지만 이 교육감이 대출을 받는 등 자력으로 변제하려고 하거나 실제로 갚은 채무는 없다고 검찰은 밝혔다.

시교육청 행정국장 A(58·3급)씨와 이 교육감의 측근 B(62)씨 등 3명은 이 교육감의 선거 빚을 갚기 위해 건설업자에게 시공권을 주는 대가로 3억원을 요구했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이 돈을 현금으로 받아 이 교육감에게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 등은 이 교육감과의 친분 등으로 수사 초기 "경마로 돈을 날렸다", "미국 카지노에서 돈을 모두 잃었다"는 등 거짓 자백을 하기도 했지만 경찰이 증거를 내밀자 모두 자백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이 교육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2차례나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고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A씨 등은 뇌물 수수로 인한 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했는데도 구속된 반면 이 교육감은 뇌물 범죄의 주범이고 선거 과정에서 정당성을 상실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2차례 영장 기각으로 불구속 기각됐다”며 “이들이 빠른 시간 내에 재판을 마쳐 피고인들 모두가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육감 첫 공판…변호인 ‘재판부 재배당’ 요청

지난 15일 인천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장세영)의 심리로 열린 이 교육감에 대한 첫 공판은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

이 교육감 변호인은 검찰의 “빠른 시간 내에 재판을 마쳐 피고인들 모두가 각자의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공판을 시작했다. 이는 불리한 재판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됐다.

이날 이 교육감 변호인은 “앞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인천시교육청 간부 A(59·3급)씨와 이 교육감의 고교동창 B(62)씨, 이 교육감의 지인 C(57)씨는 이 교육감 입장에서는 증인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는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재판부 재배당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들 3명에 대한 공판이 이미 진행됐고 재판부 역시 이 교육감의 유죄에 대한 예단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구속된 공범들이 (이 교육감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고 재판부가 이를 듣고 증거를 이미 봤기에 다른 재판부에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육감 변호인이 주장한 공소장 일본주의란 공판기일 이전에 증거능력 없는 증거를 제출하는 식으로 법관에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판사가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선입견을 품지 않고 재판에 공정을 기할 수 있도록 검사가 쓰는 공소장에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만을 정리해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수사기록 등은 재판 중에 따로 제출하도록 한 원칙을 말한다.

형사소송규칙 118조에는 ‘공소장에는 규정된 서류 외에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이 교육감 변호인의 재판부 재배당 요청은 결국 기각됐다. 검찰은 물론 재판부까지 집중심리에 대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법원․검찰 집중심리 의지…재배당 요청 기각으로 표현

검찰은 이 교육감 변호인측의 재판부 재배당 요청과 관련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 교육감 변호인의 재판부 재배당 요청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측도 기록을 봐서 알겠지만 이 사건의 쟁점은 간단하다”며 “이 교육감이 B씨로부터 보고를 받고 이를 묵인했는지가 쟁점이다. 현직 교육감의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제판을 해서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고 맞섰다.

이어 “이 교육감에 대한 증거는 아직 제출되지 않았고 당초 공동 피고인 3인의 재판은 이 교육감과 병합하기 위해 재판이 연기됐다”며 “이들 공동 피고인은 이 교육감과 함께 재판을 받지 않으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 세 사람이 양형을 제대로 받기 위해 이 교육감과의 병합재판을 원하고 있고 (재판을 분리하면) 충성을 다 받쳐서 교육감 빚을 갚아줬다는 고 주장하는 이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며 “공범인 공동 피고인을 찢어서 재판하는 경우는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병합할 것인지 재판부도 고심을 했다”고 운을 뗀 뒤 “이청연 피고인과 나머지 공범 3명의 사건을 병합하기 이전 공소장을 보면 공범 3명에 대한 공소사실로만 한정돼 있다. 현재까지 증거 기록이나 수사기록도 제출되지 않아 재판부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 피고인의 구속 만기에 쫓겨 재판의 졸속 진행을 우려하겠지만 그것도 충분히 고려를 했다. 재판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충분히 변론할 기회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두 사건을 병합했다”며 이 교육감 변호인의 재판부 재배당 요청을 기각했다.

▲인천, 진보 교육감의 위기

리얼미터가 10월 11일 발표한 9월 전국 시도 교육감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이 교육감은 ‘잘한다’는 긍정평가가 28.4%에 그쳐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광주 장휘국 교육감이 55.0%의 ‘잘한다’는 긍정평가로 8월 대비 1.9%p 상승하며 1위를 차지했다.

시도 교육감을 정책지향성별로 비교하면, 진보교육감의 평균 직무수행 지지도는 41.0%, 보수 교육감은 37.3%로 진보교육감이 3.7%p 더 높게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진보교육감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데 이 교육감만 낮아진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현재 민심의 반영이다.

이제 법정공방이 시작됐지만, 3억원 뇌물 사건은 이 교육감의 직무수행 지지도를 넘어 인천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 30개교를 세우고, 중학교 무상급식을 이뤄내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현직 교육감의 뇌물 연루 의혹과 정치자금법위반 의혹은 인천교육의 위기를 불러왔다.

인천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비리로 얼룩진 보수 교육감이 시대가 가고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을 때 인천교육계가 바라고 믿었던 것은 아주 단순했다”며 “새 교육에 대한 변화와 투명한 교육을 바랐다. 하지만 진보교육감 마저 뇌물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이 같은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육감의 현재 상황은 단순히 개인적인 비리 사건에 머무를 수 없다”며 “차기 선거에서 더 이상 진보교육감 타이틀을 단 후보가 당선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졌다는 점이 문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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