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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야학 40년 외길 못배운 이들 한풀이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들어서면서 베이비붐을 타고 급격히 늘어난 인구로 교육난이 심각했다.

열악한 교육시설로는 엄청난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교육 수요자라해도 돈이 없어 정규학교에 갈 엄두를 못내는 청소년도 부지기 수였다.

공부보다도 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상당수도 신문돌리기, 껌팔이, 남의 집 허드렛일 돕기 등으로 학비를 모아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다.

그렇지도 못하고 생업을 해야 했던 어린 청소년들은 학교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동경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야학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학은 일제시대부터 문맹퇴치 운동으로 내려왔다.

해방이후에도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야학이 어어져 왔다. 사회사업 차원에서 재산을 털어 야학을 만들고 돈이 없어 학교에 못가는 학생들을 모았다.

1960년대 들어 야학의 저변이 크게 확대됐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재건운동 차원에서 야학이 붐을 일었다. 지역 곳곳에 재건학교가 들어서고 검정고시를 준비해 정규학교 학력을 인정받도록 했다.

도시 곳곳에도 봉사활동 차원에서 야학이 크게 늘어나고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주로 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이후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야학을 이용하게 됐다. 야학 선생임들이 노동문제를 상담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야학이 싹텄다.

기존 검정고시인 검시야학과 노동야학이 주류를 이루면서 야학이 발전해 왔다. 1970년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불어닥친 노동운동 탄압으로 노동야학이 지하로 숨어들고 진학율이 높아지면서 야학이 퇴조를 걷기 시작한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야학은 검정고시와 주부 문맹퇴치, 컴퓨터, 문화교육 등의 프로그램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인천야학의 현장을 지켜 온 김형중 교장은 인천 인향초·중·고등야간학교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40년동안 교장이란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면서 외길인생을 걸어 온 그는 “이 길이 내가 걸어야만 했던 천직이 아니었느냐”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인천지역에서 교장선생님이란 직함을 가장 오랫동안 가진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늦은 1966년에 야학을 떠맡으면서 시작한 것이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송도고등학교에 다닐 때 보이스카우트 최고 대원을 했어요.

당시만해도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과 의논해서 봉사활동을 시각한 것이 야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죠.

보이스카우트 슬로건이 ‘일일일선(一日一善)’이었고, 대원 선서에서도 ‘항상 다른 사람을 도와줘라’고 외치다 보니 행동으로 옮겨 진 것인가 봐요.

-교장선생님께선 인향야학과 함께 한 길을 것어 온 것인가요. 역사는 어떻습니까.

▲인향은 1962년 남구 도원동 재건회관에서 도원향토중학으로 개교했어요. 초대 교장으로 김봉옥 동장이 취임했지요.

한때는 교실이 없어 인천공설운동장 야구스텐드에서 수업을 받기도 하고, 창고에서 생활하기도 했고요.

66년에 용현2동 재건회관으로 자리를 옮기던 해부터 교장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까지 두분의 동장께서 학교를 맡아왔지요. 향토학교 교사들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흐지부지 없어지면서 맡아 온 것이죠.

처음에는 중학 1학년 과정이었는데 동사무소 2층 창고를 얻어 중 2학년 과정을 추가로 개설했지요.

그런 다음에는 근처에 있는 대서방을 밤에만 발려 중 3년 과정으로 넓혀 갔어요. 처음에 지은 ‘인향(仁鄕)야간중학교’교명도 인천의 향토학교가 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정부지원도 없이 교실을 마련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학교는 몇번이나 옮겼나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학교를 열번이나 이사하고 여섯번을 휴교하는 아품을 겪었어요.

집 주인이 건물을 비워달라고 하면 짐을 싸야 했고, 월세가 없을 때는 눈물을 머금고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도 겪었지요.

70년도 인가봐요. 인천시와 미군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학교 교사 신축을 하다가 80% 공정을 보이던 건물이 부실공사와 강풍으로 쓰러졌던 쓰라린 경험이 있어요.

그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학생들과 교사들의 손이 부르트고, 갈라지는 노력도 물거품으로 날아가는 순간이었죠. 학익동 540번지 한국파이프 자리였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 충격으로 학생들이 교장선생님도 떠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봤죠. 선생님들도 뿔뿔히 흩어지고 차마 나까지 학생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학교 재건을 위해 바자회를 열고, 전교생이 신문판매, 구두닦이, 크리스마스 카드 판매 등으로 천막교실을 얻어 새롭게 시작하면서 인향의 역사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70, 80년대로 이어져 오면서 많은 야학들이 정규학교로 전환되었는데 역사나 규모로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나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죠. 인가를 받으면 교육청에서 많은 지원이 가능한데 야학을 고집하느냐는 말인데요. (나는)교육사업을 위해 야학을 한 것이 아니라 사회봉사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었죠.

제도권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안아 줄 곳이 야학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순수 야학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초, 중학교의 의무교육과 각박해지는 세태에서 학생과 교사모집 모두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 동안은 구두닦이, 식모 등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노무자까지 돈이 없어 못배우는 청소년들이 주류를 이루었죠.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예전에 배우지 못했던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학교에는 15세에서 72세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학업을 하고 있지요.

초, 중, 고교 과정을 하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야학 세태가 변하면서 옛날에 가족을 부양하느라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50, 60대들이 뒤늦게 공부에 대한 열정을 보이면서 2002년 가을에 초등학교 과정을 신설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교사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죠. 처음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야학에 참여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순수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들도 최근에는 부쩍 줄었습니다.

지금은 21명의 선생님들이 62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일반학교 선생님이 3분, 사회인이 1분이고 나머지 17명이 대학생과 대학원생으로 짜여 있어요. 지금까지 1700여명 학생들이 인향을 거쳐 갔습니다.

-야학이 점차 어려워 질 것으로 보입니다만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또한 개인적으로 바램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전국에 196곳의 야학이 있습니다. 많이 줄어 들 것으로 보이면서도 상당수는 지속죌 것으로 예상합니다. 빈부의 차이가 더 벌어지면서 야학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것으로 봅니다.

종교단체에서도 야학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오래 지속하지 못하더군요. 이제 그러한 단체에서 야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봉사학점을 줄 수 있는 제도적 마련도 필요하구요.

-끝으로 그 동안 선생님은 좋아서 했다고 하지만 봉사활동만 하다보니 주위에서 많이 힘들다고 불평이 많았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3대독자입니다. 93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님께 항상 송구스러웠죠. 그래도 자식이 하는 일 막지 않고 전적으로 도와주신데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맘을 가졌어요.

그 뒤를 이어 아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가족의 지원없이 어떻게 40년동안 봉사의 길을 걸어왔겠습니까.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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