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아가씨들이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도 괴팍하고
눈빛마저 흐린 할머니로 보이겠죠.
먹을 때 칠칠치 못하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요!!"
소리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 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 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 '나' 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 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번만 제대로 바라봐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줄게요.

 
저는 스무 살의 꽃다운 신부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있는 아름다운 신부랍니다.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와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서른이 되고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고
제 품안에 안겨있지 않았답니다.

마흔 살이 되니
아이들은 장성하여 집을 떠나 버렸죠.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어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았답니다.

쉰 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위에 아가들이 앉아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행복한 할머니입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 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고 있어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젊은 시절에 내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사랑을 뚜렷이 난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어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 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소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대기도 한다는 것을...

젊은 날의 기쁨을 기억해요.
젊은 날의 아픔도 기억해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 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 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 봐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 주세요.
'나' 의 참 모습을 말예요.

==========================================

스코틀랜드 던디 근처 어느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소지품 중
유품으로 단하나 남겨진 이 시가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발견되어 읽혀지면서
간호원들의 가슴과 전 세계 노인들을 울린 감동적인 시입니다.

부모님은 지금 현재의 모습 그대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추억들을 간직한 그분들의 마음을
한번만 더 헤아려주세요.

# 오늘의 명언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늙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 벤자민 프랭클린 -

/글ㆍ그림 '따뜻한 하루'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