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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리라


세상 모든 일에 앞과 뒤가 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순서를 지키지 않은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뒤죽박죽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어떻게든 풀거나 가지런히 하지 않고서는 삼베 한 필을 짜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정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천하 명인들이 겨루는 바둑판에서도 수순 하나 삐끗해서 대마를 죽이고 다 이긴 싸움을 망쳐버리는 예가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도 간단한 삼척동자의 상식이 인간의 현실 속에서는 간단없이 길을 잃는 걸 보면 역시 세상 살림을 통달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싶다.

그래서 일찍이 유학의 집대성이라는 대학(大學)은 지소선후즉근도의(知所先後則近道矣. 일의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라고 책의 머리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선후의 지혜를 얻는 순서를 다시, 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知止而后에有定이니, 定而后에能靜하며, 靜而后에能安하며, 安而后에能慮하며, 慮而后에能得이니라.

멈춤을 알고 난 후에라야 마음에 자리가 잡히고, 자리를 잡은 다음이라야 고요함이 있으며, 고요한 뒤라야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뒤라야 능히 깊이 생각할 수 있고 깊이 생각한 뒤라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이라고 가르친다. 아마도 이렇게 치국평천하를 담임하는 인사들의 수신제가의 이정(里程)을 밝힌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정안(靜安)하려 해도 어찌하는 것이 정안인지 알기도 어려우려니와, 홀로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주변이 그렇게 놓아두지도 않는 우리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그들에게 이런 가르침쯤이야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한가한 시조 읊는 소리일 듯하고 시절을 모르는 후락(朽落)한 잔소리쯤으로 들리기가 십상일 것이다. 하물며 뜻을 세울 때부터 나의 공명과 영광을 맨 앞에 두고, 세상을 내 성취의 수단으로 삼아 매진한 인사들에게 이런 가르침이 무슨 울림을 가질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사정이 어떻든지, 무릇, 나라나 이 도시이거나 모두 순서의 어긋남에 그 어지러움의 본질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세의 어그러짐이 그 하나요, 지혜의 어그러짐이 그 둘이다. 나라와 지역 사회의 살림을 맡았다면, 일과 생각의 단서를 나로부터 비롯할 것이 아니고 나라와 지역으로부터 찾았어야만 할 것을 내 이익과 내 고집으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고서야 무슨 일인들 어렵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자세부터 이렇게 선후가 어그러진 뒤에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설 리가 없다. 무슨 무슨 사업이 나와 내 패거리의 주머니를 불릴 것이고, 어떻고 어떤 성과가 나의 정치행보를 빛나게 할 것이며 이러 저런 인사(人事)가 내 패거리를 불릴 것이라는 계산을 우선하고서야 어찌 공익의 실현을 기약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도 현대는 공·사익의 공존의 시대라는 둥, 방법과 길이 어찌 하나뿐일 것이냐는 둥 교언영색의 수사와 항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묵자와 맹자의 논쟁에 귀를 기울인다.

원문을 옮기자면 번거로운 일이니 그 요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 사람이 욕을 한 데 대해 상대방이 폭력으로 대응하여 싸움이 일어나자 묵자는 그 싸움의 원인이 욕과 폭력에 있다고 보아 서로 욕에 대해 사과하고 폭력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하여 맹자는 이러한 분쟁은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미워하는 감정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 미워하는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요컨대 묵자의 방법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니 인간의 마음속에서 선(善)한 성(性)을 회복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본말을 보는 시각이 이같이 다른 것이다. 일의 원인을 찾아 해결의 순서를 세운다는 것이 이와 같이 깊은 철학의 문제다.

이러한 마음자리 잡기의 문제를 떠나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여 일의 선후를 배치하는 일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다. 첨단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면서 고가의 아파트부터 건설하면 일은 엉키게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경제자유구역의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이 재정운영의 첫 원칙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오늘 인천의 재정적인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잘못을 알았을 때 모든 일의 첫 순서는 당연하게도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이다. 일이 어려울 때는 일을 잘게 나누고 작은 성과부터 차곡차곡 쌓아 큰 힘을 만들어야 하는(積小成大) 것이 바로 일의 순서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하석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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