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제일 제대로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잘 마시는 것이고, 3~4인이 함께 마시는 것은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5~6인이 마시는 것은 제대로 마신다고 할 수 없고, 7~8인이 둘러앉아 마시면 차를 보시하는 것이다.”

한국 차의 중시조로 일컫는 초의선사는 청나라 ‘다경요채’에서 ‘차 제대로 마시는 법’을 초록한 ‘다신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초의는 차를 제대로 잘 마심은 삶을 제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선일체(茶禪一體),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삼매(茶禪三昧)가 그 것이다.

초의는 ‘차 잘마시기 운동’을 펼친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와 고려때부터 절에서 차 문화가 싹 텄다.

궁중과 양반 귀족으로 이어지고 상류사회에서 다례로 의식화 됐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귀족들의 다반사 때문에 차 재배하는 천민들이 혹사당했다. 고려때 이규보는 그의 시에서 애물단지로 변한 차로 천민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잘 그리기도 했다.

고려와 함께 승려계급이 무너지면서 차 문화도 그 만큼 쇠락했다. 이 때문에 조선후기 초의스님은 차 문화 보급에 힘써온 중시조로 불리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등에게 보다 짜임새 있는 차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차를 손수 따고 만들어 사람들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차 문화도 급속한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또다시 잊혀져가는 전통문화로 명맥만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웰빙바람이 불면서 차마시기 운동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예절을 배우고 문화를 습득하는 다예(茶禮), 다도(茶道)로 변하고 있다.

한국차문화협회 이귀례(李貴禮)(78) 이사장이 얼마전 협회를 다시 맡도록 재추대됐다.

규방다례(閨房茶禮) 기능보유자로 인천시 무형문화재 11호인 이 이사장은 초의가 했던 것 처럼 차문화 보급에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규방다례 기능보유자로 문화재로 지정된 지 4년이 흘렀습니다. 규방다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규방다례는 조선시대에 유교생활 속에서 바깥 출입이 용이하지 않았던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이웃이나 친지를 초청해 다회(茶會)를 베풀던 의식과 절차를 계승한 것입니다.

부녀자들이 방에서 행하는 다반사를 의미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직접 생활속에서 해오던 것을 전승한 생활다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규방다례는 전통 행다례(行茶禮) 입니다. 중국의 ‘다경요채’와 초의선사의 ‘다신전’ ‘동다송’ 등에 나오는 차문화 예절법을 기초로하여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죠. 전통과 예절, 과학, 생활, 청결 존중의 정신을 반영했다고 할까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은 전통적으로 차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과 비교해 우리만의 톡특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 중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3국의 차 문화가 나름대로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각각의 역사와 문화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는 향을, 일본에서는 색과 형식을, 한국에서는 맛과 멋을 중요시 합니다. 우리의 차생활은 검소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지요.

이로인해 자칫 거칠어지기 쉬운 맘을 순화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예절과 화목을 다예의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녹차 자랑 좀 할까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여 꾸준히 마시다 보면 다섯가지 맛을 느낌니다.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단 맛은 인생에 있어서 희노애락을 자기안에서 지혜롭게 향기로 승화시키는 인격수양으로 비교되기도 합니다.

-차는 단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풍요롭게하는 철학이 담겨있는 듯 합니다. 요즘 차를 마시면 건강해 진다는 이야기가 많은 데요.

▲녹차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과 귀가 밝아지며 소화에도 도움이 돼 밥맛이 좋아집니다. 해독작용이 있어 술을 일찍 깨게 하고 피로를 풀어줍니다.

은은한 색·향·미가 사색으로 이끌어 명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일본 시즈오카현은 차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곳이죠. 이 곳 사람들의 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차를 우리 국민들이 그 동안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차 문화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지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은 전 지역이 차 재배에 우수한 기후를 갖고 있지요.

우리는 전북 김제 이남에서만 차를 재배할 수 있지요. 그런데다 우리는 물이 좋아 차 대용으로 마실 것이 있어 덜 찾았나 생각듭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들여 온 커피에 중독이 됐다고 봐야합니다. 중국은 물이 나쁘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순수 음용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 전통 차와 인연을 맺었습니까. 상당히 오래동안 차문화 보급에 노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 데요.

▲조부께서 동학운동을 하셨어요. 어렷을 때 사람들이 사랑채에 모이면 떡차를 만들어 쪼개 다려서 드시는 심부름을 했어요. 그러면서 차 문화에 익숙해 진거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외국인들을 만나면 차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 때 우리도 좋은 차가 있는데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초반일 거예요.

-차 문화 보급운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오래전 얘기입니다. 80년대 초 우리차 마시기 캠페인도 벌였어요. 서울 낙선재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면서 가두캠페인을 벌인거죠.

그 때 “차가 뭐냐”며 생소한 표정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은 차문화협회를 운영하면서 전국적으로 17개 지부가 있습니다. 1979년 사단법인 한국차인회 창립 준비위원으로 일하면서 조직활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숭례원, 인설회, 다신계, 한국차문화협회, 규방다례보존회 등 차 관련 단체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어요.

그 덕분에 초의문화상, 문화훈장, 신사임당 추대, 세계도자기엑스포 홍보대사, 인천교육대상 등 과분한 영광도 얻었구요.

-그 동안 자라나는 어린이와 외국인근로자 등 다양한 계층에 차 문화를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앞서 얘기했 듯이 차 문화는 예절이 근본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차 문화를 가르치다 보면 보람을 느낌니다.

방석에 앉는 것에서부터 찻잔을 받고 마시는 과정을 배우다보면 자연히 예절이 몸에 뱁니다.

차는 어린이에게 덕목을 가르치고, 웃사람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차 문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다기세트를 들고 찾아가는 교육을 합니다.

가천길병원 간호사와 길대학에 공부하러 온 외국인들에게는 차 교육이 필수 코스이기도 하지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우리의 전통 차 문화 보급에 많은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 미국, 중국, 대만, 스리랑카, 캐나다 등지에서 차문화 교류행사를 가졌습니다. 현지에서 차 문화와 함께 한복을 선뵈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한껏 뽑낸 것이요.

우리의 차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면서 (그들이 감동할 때)뿌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차 문화 보급차원의 행사도 많이 열고 있는데 앞으로의 바램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전국 인설 차 문화전을 열고 있는 있습니다만 갈수록 호응이 높아집니다. 전국에서 2만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차 문화 저변확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인천은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에 미래를 걸고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이 살고, 오가는 송도에 차 문화회관을 갖추는 것이 꿈입니다.

문화공간에 한옥으로 회관을 짓고 차 문화 보급에 힘을 쏟는다면 우리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동양에서는 차 한잔 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차리는 것보다 더 큰 대접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훌륭한 차 문화가 우리 주변에 깔린다면 몸과 마음이 윈-윈하는 웰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규원기자 kyuwon@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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