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
옮긴이:윤미성
출판사: 오퍼스프레스372쪽.
1만3천800원.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은 열한 가지의 고독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엮어간다.

서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들과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열한 가지의 고독이 예리하면서도 정제된 예이츠의 언어로 묘사되어 가슴에 서서히 스며드는 단편소설이다.

가난한 사춘기 고아 빈센트 사벨라, 결혼을 앞둔 중산층 직장인 그레이스와 랠프, 존경과 애정 사이에서 번민하는 리스 중사와 소년병들, 장기 입원 중인 남자의 아내 미라, 실직한 가장 월터 헨더슨, 사회 정의와 지성인을 꿈꾸는 노동자 리언 소벨, 무미건조한 초등학교 교사 미스 스넬과 삼학년 학생들, 현실에 좌절하는 전직 군인 존 팰런,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아이비리그 출신의 부유한 독신 남성 켄 플랫과 카슨 와일러, 가장 역할을 못하는 폐결핵 환자 매킨타이어, 작가 지망생 밥 프렌티스와 이상을 좇는 택시 운전사 버나드 실버.

열한 개의 단편에 등장하는 이들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가져온 정신적 공허함을 체험하고, 휘황찬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사회와 가족과 이웃에게 소외감을 느끼며 전쟁의 후유증을 온몸으로 앓고 있다. 그래서 여린 가슴에는 고독과 두려움과 좌절이 너울거린다.

저마다의 상실과 고독, 서투른 인생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독을 서서히 받아들여가는 이들의 모습을 작가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탁월한 작법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이 책에서는 특히 맨 마지막의 ‘건설자들’이 그러해서 울림이 크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세 가지의 역할-가장으로서 의무감에 시달리는 이십 대 초반의 남성, 헤밍웨이처럼 낭만적으로 살며 걸출한 작가가 되고 싶지만 실상은 택시 운전사의 대필 작가로서도 갈팡질팡하는 작가 지망생,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소설 작법의 기본을 설명해주는 삼십 대 중반의 작가이자 교수를 하고 있다.

화자는 무지하고 오만했던 이십 대의 자신이 상처를 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자신도 그들의 부족함을 기꺼이 감싸 안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며,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고독한 참회의 시간을 견딘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하는 것 같아서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중적인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정제된 언어가 빚어낸 이미지의 잔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하고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작품은 더욱 드물다. 리처드 예이츠의 글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묘한 특징이 있다.

▲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불안의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다. 리처드 예이츠는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이지만 헤밍웨이와 함께 현대 미국작가에게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다수의 상을 받았는데, 첫 번째 데뷔 소설인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62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서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렸다.

199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품은 깊이 있는 리얼리즘과 작가적 냉정성이 재평가 돼, 리처드 예이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시 발행되고 있다.

그 중 한국어판 출간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주연,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로 제작됐고, 부활절 퍼레이드,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리처드 예이츠는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좋은 학교(A Good School)’, ‘부활절 퍼레이드(The Easter Parade)’, ‘특별한 섭리(A Special Providence)’, ‘평화의 위협(Disturbing the Peace)’, ‘차가운 봄날의 항구(Cold... Spring Harbor)’, 단편소설집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Eleven Kinds of Loneliness)’과 ‘거짓말쟁이 연인들(Liars in Love)’을 포함한 여덟 권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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