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의 조지아나, 데번셔 공작부인(Georgiana, Duchess of Devonshire) 좌측부터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데번셔 공작부인(1777), 조슈아 레이놀즈의 데번셔 공작부인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어쩌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이카루스의 밀납인지도 모른다

게인즈버러는 모직물제조업자인 존 게인즈버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풍경화에 소질이 있던 그는 13세 때 아버지를 설득하여 런던으로 가서 공부하였다.

당시 런던 미술계의 중요인물이었던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가 위베르 그라블로의 조수로 일하면서 프랑스 로코코풍을 배웠고, 좀 더 폭넓은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 1759년 바스로 이주한 뒤 게인즈버러는 풍경을 그릴 시간이 많지 않아 종종 촛불 아래에서 작업실에 꾸며 놓은 소형 풍경 모형을 보고 기억을 되살려 그리곤 하였다.

곧 그의 작업실은 상류층 고객들로 붐비기 시작했으며, 1762년 런던 언론계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774년에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팔말에 있는 숌버그 하우스에 정착한 후 왕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의 격식을 차리지 않는 행동과 토리당을 지지한 덕분에 공식 궁정화가였던 조슈아 레이놀즈보다 조지 3세의 사랑을 더 받았으며, 1781년에는 조지 3세와 왕비의 초상화를 의뢰받기도 하였다.

영국의 초상화가들 중에 풍경화를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은 사람은 게인즈버러뿐이었다. 백묵, 펜과 담채, 수채화물감 등 여러 가지 오브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종이와 새로운 기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토마스 게인즈버러는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시험하고자한 창의적이고 독창성을 지닌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는 레이놀즈와는 달리 기존의 전통과 역사화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직관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 바로 그의 작품은 하나의 시다.

또한 같은 시대의 화가인 조슈아 레이놀즈 경에 대해서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친구’라며 무시한 발언을 하였다.

이제 전편의 죠수아 레이놀즈의 작품에 이어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데번셔 공작부인을 소개하려 한다. 사실 데번셔 공작부인은 당대 화가들이 선망하던 모델이었다. 당시 많은 화가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레이놀즈의 작품에는 나타난 데번셔 공작부인은 10대 때였고, 게인즈버러의 작품에서는 20대 후반의 모습이라는 것을 무시하고라도 두 그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결혼 생활을 통한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겨웠는지 알 것도 같다. 분명히 얼굴의 형태와 모습은 비슷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다르게 느낄 것만은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게인즈버러의 그림 속에 있는 그녀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하지만 또 다른 그녀의 모습도 아름답다. 특히 입꼬리가 분명해져서 완성된 미소를 발견하게 된다.

세월의 흐름으로 더 강하고 짙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음을 말이다. 레이놀즈의 그림에서 나타난 미소가 몽환적이라면, 게인즈버러의 그림 속에는 숙성된 미소로 정착되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미소는 녹녹치 않는 삶을 버텨내는 내면의 쌀쌀함을 가지고 있으며, 우아하고 신비스러움이 아닌 전투적이고 차가움을 지닌 현대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얼굴의 각 부분이 별로 달라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삶이다. 삶은 우리를 철저히 변하게 만든다.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지금이라도 자신을 살펴보고 내면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이 진정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미소를 잃은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은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골든 입매(golden smile)성형은 입꼬리 올림뿐만 아니라, 입매에 영향을 주는 입술의 두께, 팔자 주름, 앞 턱 등 입매의 요소를 결정짓는 요소들을 환자의 성향에 맞게 시술하는 것을 말한다.  /송상훈 골든뷰성형외과 원장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