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학창시절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학용품과 참고서를 사던 기억이 아련하다.

20여년 전만 해도 한 학년 진급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었다.

인천에서 40줄을 넘긴 이라면 동구 금창동 일대에 들어선 ‘헌책방 거리’를 모르는 이가 없다.

영어사전, 참고서 등 필요한 책을 값싸게 사기 위해 한번쯤 이 거리를 찾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경인전철 동인천역에서 도원역 쪽으로 10여분쯤 걸으면 왼쪽에 배다리철교가 나온다.

철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헌책방 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 ‘헌책 삽니다. 팝니다’라고 내건 입간판이 보인다.

지난 1973년부터 동구 금창동에서 ‘아벨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현숙(57)씨.

“헌책방은 도심 속의 숲과 같아요.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살아있는 가슴입니다. 책을 찾으러 오는 가슴은 그리움을 안고 옵니다.”

곽씨의 정성 탓에 30평 남짓한 이 서점에는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고객의 40% 이상이 외지인이다.

민속·전통, 종교, 사회과학, 철학, 경제, 문학, 어린이책과 외국 원서 등 5만여권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곽씨는 “헌책방은 단지 책을 싸게 사는 곳이 아니라, 옛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점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근대잡지와 인천의 옛모습 사진 등을 선보이는 ‘아벨전시관’도 운영하고 있다.

“저는 책 속에서 진리를 발견했어요. 역사와 문화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곳, 금창동 자체가 역사와 문화라는 사실을요.”

금창동에는 문구, 완구, 책방, 이발소, 음식점, 사진관, 화방, 막걸리 공장, 무쇠솥 가게, 철물점 등 모두 20~50년은 됨직한 가게들과 지하에는 내노라하는 공예점들이 대거 들어와 있다.

헌책방길, 양조장 건물터, 창영감리교회와 여성 선교사 합숙소,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등이 있는 배다리, 우각로, 금창동, 도원동 지역은 동네 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기체와도 같다.

교육과 역사, 예술적 가치들이 서로 한 몸으로 얽혀 숨을 쉬는 문화의 장이다.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과 문화적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남다른 가치를 지닌 지역이다.

헌책방은 단순히 향수적 차원이 아니라 ‘책방’이라 불리우는 문화를 통해 그 지역 고유의 문화 정체성이 생성된 지역이라는 차원에서 존속시켜야할 소중한 보석이다.

그리고 수십년 전 술을 빚어내던 양조장은 근대 건축물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준다.

창영감리교회와 여성 선교사 합숙소는 19세기 말에 지어졌다. 금창동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변천과 관련한 감리교회와 선교사 활동에 대한 자료와 기록 등을 보존하고 발굴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재발견되야 할 곳이다.

그리고 투박하고 묵직한 비석만이 근대의 흔적을 쓸쓸히 증명하고 있는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이곳 역시 새로운 기록과 보존의 시각을 통해 문화적으로 재발견되야 할 역사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흔적’이다.

“우각로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민족의 한이 이곳에 담겨있고, 역사의 숨소리가 아직 남아 있음을 알리고 싶어요.”

‘우각’이란 말은 이 마을 고개가 쇠뿔과 같이 구부러져 있는데서 유래됐고, 쇠뿔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항 이후 한양길과 연길시키기 위한 고갯길이었다. 쇠뿔고개는 경인철도 부설의 기점인 우각동역이 있었던 곳이다.

서울~인천 간 주요 교통수단은 경인도로와 인천~용산 간의 뱃길 등 두 가지를 이용하던 것이 광무 3년(1899년) 경인철도가 부설됨으로써 획기적 발달을 가져오게 했다.

대륙 침략의 통로와 수탈 거점화의 일환으로 경인선 부설권을 차지하려던 일제는 미국인 ‘모오스’에 의해 1893년 3월 우각동역 기공식을 거행하게 된다.

한 때 경인간 육상 교통의 한 획을 그었고, 경인 철도의 기점이었던 우각동역은 1979년 장천리 보도 육교로 모습을 탈바꿈해 현재 동구와 중구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금창동 관통도로 공사로 인해 이 거리가 단절되고, 파괴되는 현실에 마음이 아파요. 옛 거리를 복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없애려고 하니 말이에요. 소중한 역사와 문화는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살아있던 공간은 수치와 계량으로 개념화되고, 결국 그 안에 살았던 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와 기억, 추억 등과 같은 남다른 가치들은 사라져버리고 있다.

공간을 수적으로만 파악한다는 것은 결국 그 공간이 지니는 다양한 삶의 문화적 가치들을 감추어 버리고 증발시켜, 수직과 수평, 넓이와 부피만이 남는 추상적 개념 공간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곽씨는 이와 같은 시·공간에 대한 인식은 다름 아닌 지배계층의 권력적 시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창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발의 현장에선 이렇듯 수직과 수평, 부피와 면적과 같은 수량적 공간개념으로 나뉘어져 파헤쳐지고 있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먹고 살기 힘들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든든했던 동네. 고층 아파트와 잘 정돈된 길만 아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따뜻한 정이 남아 있고,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쉬는 금창동으로 남길 원한다”고 말했다.
송효창기자 jyhc@i-today.co.kr



고서·금창동 옛사진 등 전시

30여년 세월 고스란히 보존

‘배다리 아벨전시관’은 지난 2003년 1월18일 금창동 양조장에서 개관했다.

오래된 성경을 비롯해 지금은 찾기 힘든 고서 등 많은 책들을 전시하고, 예전의 금창동 일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전시한다.

“처음에는 낡은 사무실을 하나 빌려서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손수 공사를 다 하신 뒤 간판까지 달았어요.”

돈을 더 주고 일꾼을 살 수도 있었지만, 곽씨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책방의 모든 책장과 책꽂이 등을 직접 두 손으로 만들어 왔다.

전시장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의지에서다.
전시관 구경 삯은 없다.

“전시관 구경을 하신 분 가운데 ‘좋은 구경을 시켜주고 1천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이곳을 찾는 분들이 책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든 곳이기 때문에 받을 수 없더라구요.”

그는 전시관을 통해 책을 사랑하고, 책 문화도 좋아질 것을 기대했다.

읽을거리로 책을 사는 일도 좋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고 되새기고 갈고 닦는 길잡이로 책을 곁에 두는 일도 좋다는 것이다.

책 한 권에 묻어온 흐름을 읽고 우리 사회를 헤아리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내다보는 일 역시 좋다고 말했다.

아기자기하며 조용조용 이야기를 건네오는 ‘아벨전시관’을 구경하면서 널찍한 책방 가득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삶을 살찌울 책 한 권 만날 수 있으면 하는 곽씨의 바램이다.

요즘 곽현숙씨는 책방에 없다. 책방 옆 한 집 건너 공사 중이다. 세 들었던 ‘배다리 아벨전시관’을 옮겨오기 위해서다.

그는 전시관 터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전시관을 열 터로 쓰기에 알맞은 곳을 알아본 뒤, 그곳을 치우고 장판을 새로 깔고 벽에 칠을 하는 등 함께 책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전시관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진열장 또한 손수 못질, 망치질을 해 가면서 짰고, 전기공사도 직접 두 손으로 다 했다.
이제 다시 전시관 재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전시관을 통해 책사랑을 함께 실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금창동 일대가 책을 비롯해 역사와 교육, 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는 곳으로 발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효창기자 jyhc@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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