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상우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깊은 안도의 한숨만 쉴 뿐이다. 내 본심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린다면 사회에서 구제불능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나의 비겁한 모습을 남성이 세상의 중심이 되기를 강조하는 사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실비아'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무려 8살 때부터 '보스턴헤럴드'지에 시를 발표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스미스 여자대학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이미 400편이 넘는 시를 쓸 정도로 시에 대한 열정도 넘쳤다. 스미스 여자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한 그녀는 런던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을 가서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을 하고 자신을 빼닮은 두 아이도 낳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시와 시인 남편 그리고 아이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1963년 2월 11일 추운 겨울날, 남성 두 명이 새하얀 눈밭 위로 빨간색 천에 뒤덮인 그녀의 시신을 싣고 나온다. 곧이어 죽은 실비아의 시신에 입맞춤을 하는 남편의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렇다. 그녀는 런던의 낡은 아파트에서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그 답은 그녀가 죽기 직전에 썼던 ‘아빠’라는 시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녀가 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아빠’는 실제 그녀의 아빠였던 오토 플라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남편 테드 휴즈도 포함된다. 결혼 후, 그는 집안일과 육아에는 무관심한 채 시만 쓰는 남편이었다. 거기에 외도까지 저질렀으니 얼마나 자책하고 원망했을까. 1950년대, 그 당시 사회는 집안일과 육아를 하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좋은 엄마 역할을 강조하는 남성중심사회였다.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하는 여성은 ‘구제불능’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집안일과 육아를 하며 동시에 시를 쓰는 시인 실비아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제 그녀는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남편의 창작생활을 보조하며 간간이 시를 썼지만, 매번 실패했고 우울증까지 걸렸으니 말이다.

실비아의 아빠와 남편은 지금은 살아있지 않다. 하지만 실비아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한국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지난해 통계청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 5명 중 1명은 경력단절여성이다. 2016년에 비해 경력단절여성 중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4.8%나 늘어났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7년 기준으로 우울증 진료 환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더 많았다.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재섭 교수는 “육아 및 가사와 직장생활의 병행에서 오는 부담이 여성들의 우울증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실비아를 죽였던 것은 궁극적으로 그녀의 아빠와 남편을 만든 가부장적인 사회가 아닐까. 

실비아의 ‘아빠’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준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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