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는 삶은 언제나 피곤하고 재미가 없다. 목전에 다가오는 시험날짜, 연구 작업의 납본 마감일, 원고나 작품 제출 마감일 따위 시한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시한”이라는 것은 거의 죽음과 같이 잔인하다.

대개 4년 마다 닥치는 시한에 목을 매고 살아야 하는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도 이 “임기”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개중에는 이렇게 저렇게 행운이 따라서 또 다시 나서기만하면 된다 싶은 경우라 해도 막상 표라는 것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구라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애가 타고 속이 닳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대개 4년이라는 시간은 의미 있게 일하기에는 짧고, 인간을 게으르게 유혹하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인 모양이어서 열심히 일해 보겠다던 초심이 1~2년을 유지하는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따라붙는 이러저런 특별한 권력과 사회적인 대우는 그들의 나태를 부추기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적(公的)이라는 모임의 자리들은 그들에게 진부한 언어와 생각의 습관을 조장하기에 아주 알맞은 효과를 갖는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히 공부하고 사색할 짬이라고는 좀처럼 내기 어려운 정치인들의 일상에 이러한 권력적인 변화는 그들을 거의 조건반사적인 기능에 의지해 살아가는 영혼 없는 연극배우들로 만드는 온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그들의 임기 말은 아름답기가 어렵다. 될성부른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겠지만 일단은 지난 3년 넘게 좀 등한했나 싶었던 표밭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고 뛰어다니지 않았던 골짜기도 찾아 나서고 볼 일이다. 허둥댔던 지난 세월 속을 뒤져서 부랴부랴 무언가 자랑거리도 만들어내야 하고 자신이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해야만할 명분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그들의 임기 말은 대개 공적인 업무를 빙자한 사전선거운동 기간으로 낭비되기 일쑤다.

지방선거가 꼭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재선을 꿈꾸는 사람들, 재기를 기약하는 사람들, 새롭게 입신양명을 벼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들려온다. 그중에 내게 있어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다음의 인천시장 자리에 어떤 변동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와 내 고장의 또 다른 4년에 이만큼 영향을 미칠 공직이 따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 아닐 것인가.

마침 이때 인천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나의 상식으로는 인천시장이 그 직을 시작할 무렵에 전개되었어야 할 만한 일들이 임기를 1년 남기고 파상적(波狀的)으로 전개되고 있어서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미래도시, 문화도시, 해양도시, 부자도시 …, 이 말들의 홍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러한 말들이 아니라도 현재 인천에는 내일의 인천에 관련한 많은 계획들이 차고 넘친다. 법률에 의해 의무적으로 작성되는 2030도시기본계획은 물론이려니와 인천가치재창조, 인천주권, 애인, 8대산업전략 등과 관련된 사업들이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만큼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솔직하게 말해 인천의 살림살이에 관심깨나 가지고 살아왔던 내게 있어서도 이 모든 사업들의 내용을 파악할 가늠이 서질 않는다.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그 내용들을 모두 수집하기도 어렵거니와 하물며 여차하면 백여 건이 넘게 따라붙는 세부 사업계획을 이해하는 것은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도대체 인천의 싱크 탱크의 용량이 얼마나 되는 것이고, 그를 지휘하는 인천시장의 두뇌의 용량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틀림없이 알파고를 넘어서지 않겠는가. 실로 경이롭다.

물론 이와 비슷한 경험을 과거라고 해서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전의 인천시장들의 임기 말도 다르지 않았다. 후속의 기약도 없는 착공식, 기공식을 벌이고 아무 검토도 없이 편법까지 동원해서 학교를 유치하기도 하고 대규모로 땅을 팔아치우기도 하는 불·탈법까지를 서슴지 않았다. 나의 연구실에는 이제는 모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과거 인천시의 이러 저런 계획서들이 하릴없이 책장만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의 선거의 논리 속에서 인천은 그렇게 난장이 되고 인천의 미래는 그렇게 멍들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인천시장의 행보가 전례와 같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인천을 위해 불가결하고 좋은 일이라면 임기 초면 어떻고 임기 말이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정부지원 요청 사업이 증명하듯이, 되는 것이 없다는 인천을 이끌어본 인천시장이라면, 이제 이 시점쯤에서는 다음 임기에 상관없이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이루고 싶다는 간절한 압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단 하나를 이루기에도 바쁜 시간이 아닌가. 압축과 간절함만이 감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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