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요량으로 저렇게 푸르더냐. 아파트 베란다 밑 화단에 눈이 꽂혔다. 쥐똥나무 잎이 자지러지고 머잖아 소문처럼 퍼져 날 그 향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름거린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냉장고 문을 연다. 계란 한 개가 어쩐 일로 눈에 들어온다. 몇날 며칠 코 박고 잠만 잤는지. 얼른 꺼내 손에 쥔다. 후끈 달아오른 팬 모서리에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콕콕, 두어 번 쪼고 나니 왈칵 쏟아진다. 그만 내 기억 세포까지 적시고 만다. 슬프지만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추억의 단추하나를 다시금 여미어 본다.

코흘리개 초등 3학년 시절이었다. 문예부에서 활동한 계기로 선생님의 이쁨을 받았다. 무엇이든 고분고분 따라하는 당신 제자가 어여뻤던지. 툭 하면 동시 하나 지어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영락없이 아이들 앞에서 낭송해 주시고, 우레 같은 박수를 쳐주셨다. 글 쓰는데 용기를 주시던 선생님. 어느 날 원고지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원고지 한 권을 사오라고 하셨다.

밤새 잠 못 이루고 고민하던 끝에 어머니의 약속을 받아냈다. 광 속에 갈무리 해 둔 계란 한 개를 등교할 무렵에 꺼내주셨다. 날아갈 듯 기뻤다. 대문을 막 넘어 서려는 순간, 솔개 병아리 채듯 계란 한 개를 나꿔채는 큰 올케. 안돼! 원고지 사는데 팔 계란이 어딨어. 불호령이 떨어지고, 울먹울먹 말 한마디 못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래 맞아! 다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야. 공책 한권, 원고지 한권 살 돈 없이 가난한 건 다 아버지 때문이라구! 스물두 살에 시집 온 맏며느리가 장하다고 아예 광 열쇠 꾸러미를 내주고 주권을 몽땅 잃은 어머니 죄이기도 해. 꽃집을 거쳐야 학교가 나타나는 산길을 걸으며 무섬증에 떨고 서러워 목이 메었다.

그러나 누구든 함부로 그녀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풋보리 그슬려 열한 식구 보리보개를 넘겨야 했고, 반달만한 국수반죽 두덩이 팔이 늘어져라 밀어 멀겋게 끓여 그 식구 끼니 잇도록 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기질 못 했으리라.

이젠 계란 한 트럭분을 사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겼건만, 계란 한 개의 의미, 원고지 한권을 사서 열심히 메우고 싶었던 그 간절함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