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는 측에서 듣는다면 대단히 섭섭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상당히 바람직한 사건이 일어났다.

순천ㆍ곡성이나 광주의 표심의 변화나, 소위 전략공천이라는 거물 정치인들의 '제멋대로 출마'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 솔직히 내게는 한국 정치 변화의 신호탄쯤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한다. 물론 나는 그렇게 자청해서 희생된 인사들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숨겨놓은 억하심정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이번 7ㆍ30 보궐선거의 결과를 좀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인 분열의 구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까지 보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니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고 하는 정도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재보선이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있어 정치는 여전히 작전이고 대결이고 싸움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에 대한 애정의 대결이 되어야 하고 사회적 합의로 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민주적인 선거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단 한 방에 의지하려는 선동과, 야권단일화 같은 오직 승리만을 지상의 가치로 하는 부조리한 편 가르기, 나의 당위(當爲)를 내세우고 강조하기 보다는 오로지 상대방의 약점만을 물고 뜯는 하이에나를 연상시키는 단세포적인 혈투의 장면들…, 이런 것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끊임없는 권력의 교체를 전제로 성립한다. 바꾸어 말해 언제나 승패는 바뀔 수 있고,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승패에 대한 관용과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도 좀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성실한 경쟁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민주정치의 건강성을 위해서는 여당이라고 불리는 승자보다도 야당이라는 패자의 성숙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이번 재보선의 새정치의 패배가, 이 나라 야당의 건강성 회복에 큰 충격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하며 반기는 것이다.

그런데 4ㆍ19 혁명 이후 장면 총리의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 세 번의 집권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늘 야권이라는 이름과 이미지로 불리고 있고 구민주당의 적통을 잇는다는(물론 나는 이러한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소위 범야권은, 아무리 백보 양보하고 바라보아도 이러한 원칙으로부터 멀어도 너무 멀리만 있어 왔다는 인상을 버리기 어렵다.

대체로 그들은 진보와 좌파(약자의 편이라는 의미에서), 통일이라는 아이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장해 왔지만, 내게, 그들이 내세운 성실한 정책의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상대당의 정책에 반대하고 발목잡기, 의회에서 벌이는 폭력, 선거에서 승리만을 위한 이합집산과 연대라는 이름의 원칙 없는 작전, 사회적 사건의 문제 확대와 선동, 허무한 반성을 비롯하여 말 뒤집기, 편짜기, 무조건 상대 부정하고 약점잡기, 막말하기 따위의 부정적인 인상만이 강하게 남는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사회가 이만큼의 복지 제도를 가지게 된 것도, 대 북한의 정책을 유지하게 된 것도, 지방자치의 위치를 유지하게 된 것도 모두 자신들의 공이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불평을 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그러한 정책들은 사회적으로 정교한 논쟁을 거치지 못한 채 너무도 허접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심지어 상대세력의 동일한 과제 인식에 조금도 더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많은 사회 계층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벌써부터, 선거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해 둘러앉은 그들의 자리에서, 만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인사들의 이름들이 오르내리고, 돌려막기와, 그래도 우리 편인 데라는 감싸기, 꼼수 찾기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바라보기가 한심스럽다.

새정치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범야권에게 단도직입으로 권고하고 싶다. 또 다시 꼼수를 궁리하지 말고 완전하게 흩어지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래서 되지도 않는 이념과 패거리를 과감히 집어 던지고 철저하게 민주주의의 원칙인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정신에만 충실한 야당을 전혀 새롭게 구축해야 하지 않겠나. 국민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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