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럴 줄 알았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제 어쩌겠다는 거야”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지방자치단체 후보 무공천 방침이 번복되면서 시중에 가장 많이 튀어나온 말들이다.

“진작 그랬어야지”라는 말들도 섞여있긴 하지만 여당으로부터 나온 빈정거림이거나 무공천 결정에 의해 직접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던 일부 정치권에 편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와서 아무리 뭐라고 이러한 사건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변명을 해도, 시중(市中)은 그저 황당해 할 뿐, 이러한 현상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국익의 증대와 지방자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을 꼼수정치의 비극적 단막극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대의를 따르는 선진정치의 진보적인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고, 결국 또 다시 이 나라 국민들의 정치 소외를 가속화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기초선거에 대한 중앙정당의 공천 문제가 정말로 이 나라 지방자치발전에 기로가 되는 중대과제가 될 수도 있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위헌성 시비를 극복하고 대형 정치적인 혼란까지를 각오해야 하는 거대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제를 풀어가는 이 나라 정치권의 작태를 보면 이들이 소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인 집단들인지…,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문제는 일찍이 이 나라에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된 직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들을 비롯해서 의원단체들이 나서서 중앙정당에 의한 공천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꾸준히 비판하였고 언론과 시민단체들 또한 상당부분 그들의 주장에 동참하였다.

결국 그러한 공천 반대 분위기가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양당의 후보는 모두 이들의 주장을 전격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선택의 이유도 우리 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개혁과제라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랬다면, 그리고 이 나라 정치판이 정신 바른 곳이라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부터 이 과제는 활발한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 물론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선택하기 이전에 끝냈어야 하는 작업이지만….

그러나 이 나라 정치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방선거가 턱밑에 올 때까지도 당리당략적 사건에만 몰입하여 싸움질로 지새우다가 이 문제 또한 지성인들의 논쟁이 아니라 조직 폭력배들의 한 판 승부의 소재로 몰고 갔다.

자신들의 지역권력 기반이자 수족들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을 명분만을 찾기에 골몰해서 말 같잖은 이유들을 웅얼대다가 한 쪽은 체면불구하고 없던 공약으로 하자고 일찌감치 뭉개버렸고, 다른 한 쪽은 따라가자니 갈 수도 없고 안 따라 갈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기에 이르렀다.

그 판에 새정치한다고 그렇지 않아도 정신 사나운 정치판을 어지럽게 흔들던 인사가, 드디어 자신에겐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적 각성에 이르면서, 호남이라는 전통적 지지기반마저 무너져 내릴 위기에 처한 정당과 함께 동병상련의 결합을 하면서 내놓은 해법이, 새정치=약속이행정치=기초선거 불공천=새정치민주연합 창당이라는 난해한 함수식이었다.

물론 나는, 듣기만 해도 맑은 물에 귀를 닦아야 하는 이러한 꼼수놀음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에 삶을 의탁한 한 생명으로서 이렇게 상도(常道)를 벗어난 정치는 그냥 외면만 할 수도 없을 만큼 지나치게 위험해 보인다.

자신의 며칠도 지나지 않은 과거의 발언을 언제라도 실익 앞에서 거리낌 없이 뒤집어엎으면서도 변함없이 대의를 외치는 뻔뻔한 구태의 반복도 참을 수 없이 역겨우려니와, 나쁜 짓 먼저 한 선배의 입장에서 상대의 몰락을 앞 뒤 맞지 않는 언어로 희롱하는 능글맞은 상대의 모습들에서도 극심한 정서적 배반을 느낀다.

무릇 역사 속에서 말이 바로서지 않던 사회들이 걸어간 길은 항상 비극이었다. 말기 로마와 중국의 왕조들이 망해갈 때의 모습이 그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시대와 일본제국이 끝나가던 때, 소위 몇몇 지식인들의 망동에 시달리던 조선조 말이 그랬다. 강조하거니와 모든 역사상의 비극은 말 같지 않은 말의 비극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나라 정치인들의 말 같지 않은 말의 폭주가 걱정되는 이유다.

바야흐로 말의 홍수를 겪어야 하는 선거가 목전이다. 제발 말 같은 말을 고르기 위해 후보들의 밤이 짧았으면 한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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