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참으로 가슴뭉클한 일이 있었다. 20여 년을 알고 지내온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병원을 폐업하신다고 소위 은퇴선언을 하셨다. 그 어른의 연세는 이미 80세가 넘어가시는 데도 아직도 정정하셔서 후배들은 더 일을 하시라고 하는데도 한사코 사양을 하셨다.

 
그 분은 젊은 시절에는 여의사회 회장으로 다년간 봉사를 하시기도 하셨고, 적십자활동도 오래하셨다. 늘 의욕이 넘치셔서 60세가 넘으셔서 가정의학과 노인복지를 다시 공부하시는 가하면, 비교적 최근인 70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웃음치료며 노인상담 등을 공부하셨다. 그 선생님에게 산부인과의사로도 하실 일이 많으신데 무슨 공부를 또 하시냐고 여쭤봤더니 ‘더 나이가 먹은 후에 어떤 삶을 살까를 고민하신다’고만 하셨다.

그 선생님은 은퇴파티에서 강원도에 내려가서 봉사를 하시며 사시고 싶다고 하셨다. 수년 전에 노후에 살려고 강원도에 작은 집과 터밭을 마련하시고는 간혹 내려가서 지내시다 오시곤 하였는데, 은퇴 후에는 아예 그 곳에 내려가서 사실 거라고 하셨다.

도시에 살던 분이 농촌생활이 적응이 되시겠느냐고 어쭈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 곳에 가면 농촌 노인들에게 노인치료와 상담등을 하면서 봉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제야 그 분이 은퇴 이후를 재미있고 보람되게 사시기 위해서 60세가 넘어서 가정의학을, 70세가 넘어서 노인상담과 복지문제를 공부하신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평생을 공직에서 건실하게 사시다가 60세에 명예롭게 은퇴하신 분의 글을 읽은 일이 있다. 그 분은 25살에 공직생활을 시작해서 35년간을 나라와 직장과 가족을 위해서 일하다 은퇴하였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겠다면서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그 동안 못해본 여행과 등산과 독서를 하면서 지내겠다고 다짐을 하셨단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적지않게 30년이 흘러서 나이가 90살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생존해 있다보니 지난 30년의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아쉽게 느껴지면서 그 시간들을 좀 더 보람있는데 사용하였으면 좋았을 것같다는 후회가 든다고 하셨다.

그 분은 아직도 책을 읽을 수있는 시력이 있고 산책을 할 수있는 기운도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100살을 넘겨 사실 것같은 데또 다시 10년 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영어공부를 시작하신다고 하셨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자꾸 길어진다. 건강만 잘 관리하면 120살을 살 수있다고 하고 실제로 지역의 통계를 보면 100세를 넘기신 분이 한 동에 한 두분 이상은 계시는 것을 본다. 오래사는 것이 좋기는 하나,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순 생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인으로 생활을 하면서 오래사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거다.

노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고독이라고 한다. 한 때는 직장에서 사회적인 지위도 누리고 집에서도 대우를 받으면서 잘 나가던 사람이,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집에 있은 후부터는 오라는 데도 없고, 갈 곳이 없어지면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가 너무 어렵다.

이런 경우에 통상적으로 사회적인 소외감으로 인해서 우울증이 오고 삶에 대한 의욕이 소멸된다. 인간은 더불어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사업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분들을 보면 수천명씩 몰린다. 그 일자리가 각자의 재능과 경력을 살릴 수있는 것이면 금상첨화다. 노후에도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도움도 되고 사회 봉사도 할 수있는 것이면 더 좋다.

국어선생님의 경력을 살려서 하는 동화할머니, 다섯 자녀를 양육한 경험을 살려서 하는 산후도우미 할머니, 내 손자를 돌본다는 생각을 하시는 지역방범대 할아버지, 등하교 도우미, 다문화가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시는 할아버지등 그 모든 분들의 재능이 이 사회에 힘이 되는 봉사의 근본이다. 어른들의 이러한 노력이 후손들에게 귀감이 된다.

이런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활동력이 있고 조금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 각자의 재능에 맞는 노후를 대비해야 하겠다.

노후에 봉사를 위해서 70살이 넘어서 노인복지를 공부하고 웃음치료를 배우고, 90살이 넘어서 어학공부를 해서 봉사하시겠다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보람과 가치를 느끼면서 사는가는 나 스스로에게 그 답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안귀옥 변호사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