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경기장-동구 배구경기장, 인천의 옛 포구

 

북성포구, 만석·화수부두
옛 명성 뒤로하고 아련함만

사람이 없기로 유명한 인천시 동구에 모처럼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렸다. 아시아경기대회 배구경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구 강국인 한국, 중국, 일본 등 선수들은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성수씨 부부가 동구 배구경기장을 찾은 또하나의 이유는 연애시절 단골 데이트 코스였던 인천의 옛 포구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카메라를 들고 북성포구,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을 돌며 옛 추억을 떠올릴 참이었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북성포구에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옛 명소를 찾은 이들에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만석고가교 옆으로 기껏해야 자동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작은 도로로 들어서니 북성포구를 알리는 초라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공장과 오래된 아파트 사이로 난 작은 골목은 두 사람이 지나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비좁았다.

골목을 지나자 입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나타났다. 30여m 길이의 골목에 10여 곳의 작은 횟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은 횟집 수족관 앞에 싱싱한 횟감을 고르기 위해 발길을 멈췄고, 이미 횟감을 고른 사람들은 포구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노을을 바라보며 사진촬영에 한창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싱싱한 회와 해산물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성수씨네 부부는 연애시절 예전 돈이 없어 바라보기만 했던 싱싱한 회를 한점 들며 옛 추억을 되새겼다.

이제는 추억의 명소로 아름아름 알려진 북성포구는 6·25 전쟁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나면, 그리고 통일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고향에 가려고 정착한 곳이다.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를 버려 ‘똥마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인천항(내항)과 연안부두가 조성되기 이전에 인천의 대표적인 어시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싱싱한 생선을 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입소문으로 물때와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찾곤 한다.

성수씨네 부부는 싱싱한 횟감과 함께 아련한 추억을 찾았다는 즐거움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성수씨네는 화수부두로 발을 돌렸다. 철선 80여 척과 목선 40여 척 등 120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는 화수부두는 생선 비린내로 가득했다는 화수부두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선 10여 척이 물이 빠진 화수부두 앞 수로 갯벌에 걸쳐 있었고, 주민 2~3명이 작은 고깃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동국제강과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형 공장들이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화수부두는 인천의 대표 어시장이었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분주했다. 수산물 유통물류센터 등 현대화를 통해 화수부두가 거듭나고 있었다.

성수씨네 부부는 어민들이 직접 수산물을 팔고 있는 화수부두 앞 천막에서 발을 멈췄다. 제철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이 곳에서 아들 민준이가 좋아하는 말린 생선을 사고 마지막 코스인 만석부두로 향했다.

 
만석동 일대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공장을 지나자 인천 근대화의 중심에 있던 만석부두가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북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석부두는 70여m에 달하는 물량장 안쪽으로 넓은 주차장이 관광객들을 맞았다. 수산물 직매장 앞에서 어민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고, 직접 잡은 수산물을 팔고 있었다.

만석부두는 인천항(내항, 연안부두)이 조성되기 전인 1950~1960년대 정월 대보름이면 3일이 넘도록 풍어제가 열리고 고깃배가 수시로 드나들어 수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었다.

근대화 속에서 만석동 일대를 빼곡히 메웠던 소나무 숲에는 동일방직과 대성목재, 한국유리 등의 공장이 들어섰고 만석부두는 크고 작은 고깃배와 여객선으로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만석부두에 등록된 어선은 고작 8척에 불과하다. 어선을 대신해 유선(16척)과 낚싯배(22척)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유선도 지금은 낚싯배로 사용되고 있었다.

지난 1960년대까지 인천 경제의 중심으로 주목받았던 만석부두 일대는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으로 낡은 집이 밀집돼 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이른바 ‘아카사키촌’은 인천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대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 일대를 중심으로 주거환경개선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철모르던 젊은 시절 데이트 비용이 없어 자주 찾던 인천의 옛 포구에서 어느새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성수씨네 부부는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공장들 사이로 옛 명성을 뒤로 한채 추억의 장소로 변모된 만석부두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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