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인천신문이 창간기획으로 인천·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인물들을 매주 한분씩 만나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문패를 달고 매주 월요일마다 독자 여러분과 마주합니다.
인터뷰를 마친후 ‘특별히 내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이사람’을 소개받는 릴레이 형식으로 지면을 꾸미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릴레이를 시작합니다.

‘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1. 조각가 정현

국립현대미술관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는 현 싯점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미술관측이 ‘올해의 작가전’을 기획전의 ‘얼굴’이라고 내세우는 만큼 화젯 거리의 중심에 있다.

선정과정은 이렇다. 관장과 큐레이터 15명이 장르와 방향을 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단 안건을 던진 후 개별 조사와 숙고를 위해 3주의 시간을 갖는다. 본격적으로 안건을 토론한다. 그리고 1주일 뒤 투표한다. 다시 3주 동안 개별 검증절차를 거쳐 토론을 한다. 마찬가지로 1주일 뒤 투표에 들어간다.

같은 과정이 4개월동안 진행된다. 이제 최종 투표에 나서 최다득표자가 올해의 작가에 오르는 것이다.

‘2006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조각가 정현도 이렇게 탄생했다. 2005년 서양화가 이종구에 이어 연이어 인천출신 작가가 영광의 월계관을 썼다는 점에서 인천 문화·예술인 너나할 것 없이 한동안 울렁거리는 감동이 지니고 살았다. 창간 인터뷰 인물로 일찌감치 작가 정현을 낙점지은 이유가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는 대목이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차로 10여분이 채 안되는 고양 일산 덕운동 야산자락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한가득 환한 미소로 맞는다.

“뜻밖이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방문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영문이 뭘까 했습니다. 올해의 작가로 전시를 할 것인가 답을 달라는 말에 그자리에서 승낙했지요.”

현대미술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일정 주기를 두고 붐을 타는 데다 편승하지 못하면 엘리트작가군에서 떨어져나가는 세태다. 그러나 정현은 붐과는 동떨어진 거리에서 중심을 잡고 자기 세계를 끌고나가되,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오고 있다. 미술관측으로부터 전해든 그의 가치평가에 대한 변이다.

▲침목, 아스팔트 콘크리트, 석탄, 잡석, 그리고…

작품 이야기를 ‘침목(枕木)’에서 출발한다. 기차 철길 아래 깔려 레일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나무 침목은 조각의 재료로는 예외적이다.

“어느날 침목을 바라본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레일아래서 육중한 무게와 비바람을 묵묵히 견뎌온 인고의 세월이 배어 있지요. 침목이 한 인간이자 역사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폐품이지만 거대한 에너지가 녹아있죠. 나와 침목이 만나는 기점을 찾는내고자 했습니다.”

침목으로 작품을 해보자 마음먹은 후 실행에 옮기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2001년 9월 금호미술관 초대전에서 비로소 침목을 내놓았다. 평단은 일제히 작가 정현을 주목했다.

예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아스팔트 콘크리트라는 또 하나의 낯선 재료와 맞섰다.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아스팔트 덩어리를 그라인드로 자르고 예리하게 절제된 자국을 내는 방법으로 누워있는 인체를 구성했다. 몇개의 덩어리가 모여 구성된 인체는 자연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고자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즉 인체와 자연의 형태를 동시에 지닌 그의 작품은 견고한 덩어리와 날것으로서의 물질이 만들어내는 ‘생명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2004년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전’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그는 또 한번 화단에 깊은 인상을 심는다.

또 있다. 지난해 개인전에서는 석탄과 잡석에 주목한다.

“조각 재료로 돌이 선택되려면 클릭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막돌은 한마디로 별볼일 없는데다 불규칙한 성질을 갖고 있어요. 그점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찮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겁니다.”

▲경직성을 벗다

그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일구게 된 토대는 프랑스 유학시절이 있기에 가능했다.
문화의 아방가르드로 일컬어지던 홍대앞에서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내내 예술에 대한 갈증으로 공허함을 지니고 살았다.

“내가 예술을 해야하는데 서구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미술보다 우리의 역사와 정신문화를 먼저 알야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때 마침 인천에서는 주위에 탈춤을 추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과 춤추고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자연스러웠지요.”

그러나 민중미술이 태동을 하자 그는 고민에 빠졌다. 예술보다 운동이 앞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파리였다.

“교습때마다 교수들은 내 사고와 표현의 경직성을 지적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인체를 잘 알고 있기는 하다. 모델에 대한 묘사는 뛰어나다. 그러나 인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원초적인 습관들을 버려야 경직성을 벗을 수 있다는 겁니다.”

3년이 걸렸다. 그동안 흘린 눈물은 말로다 표현 할 수 없다. 아카데믹한 조각에서 떠나는 분기점인 것이다.

▲인천과 정현

사실 그의 유명세에 비해 개인전은 숫적인 면에서 절대적으로 작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15년동안 고작 일곱번에 불과하다. 고향 인천에 작품을 들고 온 예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은 많이 하되 작품활동은 가능한 삼가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유학시절 정진하던 생활리듬을 줄곧 지키고자 했지요. 작업을 하다 더이상 놓아둘 공간이 없을 때 전시를 하자,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전시회 하겠다며 나서서 한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인천에서 개인전을 열 계기를 못잡은 셈이다.
“재료를 선택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배경에서 인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위적이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에서 재료를 얻고 표현하려는 나의 성질은 나서 자란 인천에서 형성됐죠.”

드디어 인천에 작품을 들고 올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오는 9월15일부터 12월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을 마치고 곧바로 인천종합문예회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얼마전 인천종합문예회관으로부터 초대전을 제의 받았습니다. 소홀한 나에게 각별한 것들을 만들어 주는 인천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예의 환한 웃음을 웃는 그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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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은…
▲1956년 인천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조소과 졸업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조소과 졸업 ▲원화랑·프랑스문화원·금호미술관·김종영미술관 등 개인전 7회 ▲현재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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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만날 사람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내가 아는 장석만은…

대학시절부터 함께 술마시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그를 표현한다면 한가운데 순수함이 있다. 그의 사고의 출발점에는 맑음이 있다. 사고 판단을 할 때도 바탕에는 순수함이 있는 귀한 사람이다. 한가지 더, 그는 무지무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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