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서너 마리가 아파트 부엌창틀 난간을 서성이며 ‘구구’ 거린다.
아, 친구가 왔구나! 즉시 쌀통을 열고 한 종지 떠서 창틀에 놓는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아마 낟알 값으로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신도시 한복판이기에 똑같은 고층아파트가 즐비하여 숲을 이룬 곳이다. 사람들도 숫자로 동 표시를 하는데 귀소본능이 뛰어난 놈들이라 그런가?

잿빛목덜미가 햇빛에 반사되어 흰 보라색을 띤 목선을 따라 S 바디를 갖춘 멋쟁이를 가까이 보게 된 것은 벌써 두 해 전의 일이다.

며칠 뒤엔 흰 놈을 데리고 와서 난간을 서성인다. 한 줌 주었더니 게 눈 감추듯 먹곤 사라졌다. ‘옳지! 가끔 굶고 허기질 때 요기라도 하게 먹이를 주어야 겠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대여섯 마리를 대동하여 맡겨 놓은 먹이를 달라 듯 공기그릇을 비우며 수시로 시위하는 폼이 떼강도와 같지 않은가. 그래도 찾아 준 친구라 고맙고 측은하다.

비둘기와의 만남처럼 경상도의 문우를 만나러 방학 때면 간다. 오랫동안 밀린 얘기로 새벽을 밝히며 나누는 술잔에 취기가 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글에 대한 내용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끝없이 나오는 얘기는 넘어가는 술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까지 토해 놓은 이야기들로 거실이 수북하다. 다음에 보기로 기약하고 올라오는 마음은 후련하고 텅 비어 있다.

만남이 여러 해가 되었다. 누구든지 스트레스가 쌓이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를 그리던 때가 있다. 아마 비둘기도 먹이를 먹는 것보다 다른 의미를 찾으러 나에게 오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창문을 열어놓고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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