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년을 맞는, 국내 대표적인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일정을 시작한다.

10월 12일부터 20일까지 9일간이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누' 등을 만든 김대승 감독의 세번째 영화 '가을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연인을 잃은 한 남자가 10년 흐른 어느 날 여행길에서 우연히 또 다른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부산영화제가 개막작으로는 처음으로 멜로영화를 선택했다.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막바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대승 감독을 만났다.

올해 추석연휴는 생각도 못하겠다.

"지금도 마지막 후반 작업 중이다.

영화 음악 선곡도 다 못 마쳤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도 더 손봐야 한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백화점 사고 장면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욕심 같아서야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고 더 여유롭게 작업하고 싶은데 부산영화제 일정에 맞추려면 연휴도 반납하고 바짝 일해야 할 형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대승 감독이 삼풍백화점 사고 장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에 대해 궁금해 한다.

"영화 속에서 그 장면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백화점 붕괴 장면의 충격이 대중들이 당시 느꼈던 분노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아직까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을 거란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

'가을로'의 주된 테마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라고 들었다. 일종의 로드무비인가. 여행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내면적 퍼포먼스다.

"맞다. 영화 속의 현우(유지태)가 떠나는 여행은 치유의 의미를 가진다.

관객들 또한 영화의 여행길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고 그 길의 끝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현우가 여행길에서 만나는 세진(엄지원)이란 여인 역시 여행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인생의 새로운 힘을 얻는 인물이다."

로케이션이 중요했겠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 상에 나오는 장소들이 전부 임권택 감독과 작업하면서 가봤던 곳이라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영화 장면들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로케이션 촬영을 다니면서 내가 떠올렸던 그림대로 찍힌 장소도 있었고 다른 느낌으로 찍힌 곳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다 아울러서 영화의 어떤 지점부터는 자연이 사람을 압도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단순한 멜로영화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의 여행은 현우와 세진, 둘이 하고 있지만 여행 내내 10년 전 백화점 사고로 목숨을 잃은 현우의 옛 연인 민주(김지수)가 두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다.

또 마지막으로 그 세 사람을 대자연이 감싸 안는 구조다."

상처를 가진 남녀가 만나 새로운 사랑을 키워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표현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고.

"난 언제나 내 영화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도움이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랬다.

'혈의 누'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였다면 '가을로'는 그 분노를 보듬어 안고 위안을 주는 영화이기를 바란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산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한 만큼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개막작이면 영화제의 얼굴 아닌가. 개막작으로 선정해 준 영화제 측에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만큼 두려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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