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7일 목요일
아침을 먹고 바깥공기를 쐬었다. ‘오늘이면 북극을 떠나는구나’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북극의 하늘이 왠지 어두웠다. 아침부터 아주 적은 양이지만 안개처럼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단원들의 마지막 날을 슬프게 여긴 북극이 안개비로 그를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짐을 챙긴 후 독일 기지로 향했다. 독일 기지에선 어제 라디오존데를 띄울 때 만났던 레이너 독일 대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레이너가 기지의 역사, 연혁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북극에서의 연구 활동에 대해 알려주었다. 영하 76도의 맹추위에서 연구소를 건설한 연구원들의 이야기부터, 계절별로 체류하는 연구원의 체류 수, 연구원의 연구 분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외국인 연구원과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면한 것이어서 다양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30분여동안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레이너는 우리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 주었다.
독일 기지를 둘러봤다. 이곳에서는 주로 대기 과학에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대기중으로 레이저를 쏘아 올려 그 반사되는 빛의 파장을 분석해 대기중 물질의 구성을 알아내는 스펙트로포토메타라는 기계를 자세히 관찰했다. 스펙트로포토메타는 생물 분야에서 단백질 함량 및 농도를 측정하는 것 정도에만 쓰인다고 생각했던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과학은 기본적인 원리가 같으면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윤영준 박사님의 뜻깊은 설명도 이어졌다.
단원들은 우리나라 기지도 둘러보았다. 옥상에는 대기를 관측하는 여러 관측 장비와 기구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지에는 식물의 광합성량과 호흡량을 측정하여 데이터화 하는 기기가 있었다. 우리 기지 역시 많은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북극에서 마지막 점심식사가 있었다. 단원들 모두 점심을 먹으면서 아쉽다는 말을 했다. 이윽고 경비행기에 올랐다. 단원들 모두 아쉽고 피곤한 나머지 말없이 조용히 잠들었다. 북극으로 갈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경비행기는 30분 만에 북극을 날아올라 롱이어비엔에 도착했다.

2006년 8월 18일 금요일
롱이어비엔에 도착한 어제는 극지 박물관과 시내 관광을 했다. 기념품 가게에도 들렀는데 물건이 너무도 비쌌다. 그동안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북극에서의 다시는 못 잊을 추억들을 꿈으로 간직하고 싶어서였는지, 어제는 너무 잠이 잘 왔다. 롱이어비엔을 떠난다는 아쉬운 생각에 해가 지지 않은 이른 새벽의 호텔 문을 열고 나왔다. 롱이어비엔의 차가운 공기가 반겨주었다.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 마시니, 가슴속은 시원해졌지만 머릿속은 아쉬움이 가득 차 더 답답해진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지금은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아쉬웠다.
롱이어비엔 공항에 내렸다. 트롬소에서 롱이어비엔에 처음 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단원들은 모두 북극에 온 거 같다면서 추위에 몸을 움츠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린 벌써 북극의 기후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롱이어비엔의 공항은 크기가 정말 작다. 100평 남짓한 작은 강당정도의 크기다. 오슬로로 바로 비행하는 항공기가 이번 시간대에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공항은 북적거렸다.
북극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창쪽을 사수하며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기 바쁜 단원들이었지만, 오슬로로 향하는 새벽 비행기에서는 모두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이전에 잠이 들어 버렸다.
공항에서 Clarion Royal Christiania 호텔로 갔다. 오슬로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호텔 앞 거리는 도심지처럼 꽤 넓었고 상가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와 달리 건물들은 다양한 모습과 동상이나 장식, 화단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유럽의 거리에는 말로만 듣던 ‘거리의 예술가’ 들이 많았다. 특이한 생김새의 옷차림을 하고서 이상한 악기를 부는 사람들, 꼬마 아이와 함께 노래 부르는 아저씨, 온몸을 은색으로 칠하고 동상처럼 가만히 서있는 사람, 인형을 들고 나와 인형극을 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재미있는 광경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동전을 하나둘씩 던져주다가 남아있는 동전이 거의 바닥이 났다.
오슬로 시청은 외벽부터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분수대도 있고, 벽시계도 달려있고, 외벽에는 웅장한 크기의 벽화도 있었다. 시청 내부에 들어가 더 놀랐다. 시청 내부는 공개하는 날이 별로 없지만 마침 오늘은 일반인 공개가 허용되는 날이었다. 정말 일정 내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시청 내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거대한 강당이 있었다. 오슬로 시청은 여러 종류의 노벨상 중에서 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라고 한다.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우리를 반겼다. 강당 내부에는 출입이 금지되어서 밖에서만 살펴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옛날에는 궁전으로 쓰였었는지, 내부 시설은 정말 화려했다. 모든 벽면과 바닥 면은 수를 놓아두었고, 천장에는 그림이 수없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대리석 벽난로도 있었고, 큰 규모의 회의실도 있었다.
호텔 우측의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의 외벽 역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정문에 서 있는 경비원 두 명은 검은 바지에 빨간 윗도리를 입고 검은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려왔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에 경비원들은 메고 있던 총을 반대쪽 어깨로 바꿔 메며 자세를 바꿨다. 한 시간마다 이렇게 자세를 바꿔 지루함과 힘든 것을 달랜다고 한다. 호텔 뒤 공원을 따라 걸어가니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었다. 미리 연락을 취하지 못했는데도 대사관 공무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우리말은 정말 정겨웠다.
오슬로의 국립미술관도 관람했다. 마침 추상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피카소의 여러 걸작도 있었고, 유명한 뭉크의 ‘절규’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림에는 전부 센서가 달려 있어 건드리면 경보음이 울리게 되어있었다. 돌아와서 안 사실이지만 이런 철저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뭉크의 ‘절규’작품은 도난당했다가 얼마 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럼 우리가 본 그 작품은 정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항구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배가 왔다. 100인승 정도 돼 보이는 작은 배였다.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배를 타고 프람 박물관으로 향했다. 프람 박물관의 중앙부분에는 거대한 배가 있었다. 이 배는 난센이 북극의 해류의 흐름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한 배를 직접 옮겨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난센은 우선 북극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북극 해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자신의 가설대로 해류가 흐르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 배를 제작했다. 북극에 도착한 후 이 배는 바닷물과 함께 얼어붙었지만. 바닥이 둥글어서 얼음의 힘이 분산되고 배가 파손되지는 않았다. 난센은 바닷물과 함께 얼어붙은 이 배를 타고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3년 동안 북극에서 체류했고, 배는 결국 북극의 해류를 따라 다시 바다로 나왔다. 강 박사님이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다. 아문센이 처음으로 북극점을 정복할 때, 갈 때는 개가 썰매를 끌게 하여 가고, 올 때는 썰매를 끌었던 개를 잡아먹으면서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말을 듣고 극지의 미개척시대에 연구를 하기 위해 뛰어든 연구원의 도정정신에 감탄했다.
바이킹 박물관에는 가장 원시적인 배부터, 최근의 경주용 요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배가 전시되어 있었다.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한 특별한 모양의 배를 보니 신기했다.
호텔에 들어갔다 나오니 밖은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해지는 밤’이 되어 있었다. 단원들은 오슬로 시내의 밤거리에 한껏 매료되었다. 멋있는 건물에 야경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거리의 예술가는 즉석에서 춤추고, 마술도 하고, 악기연주도 하는 등 볼거리가 참 많았다. 일정보고를 마치니 새벽 3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결국 오지 않기만을 바랬던 19일이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이제 한국으로 곧 돌아가는구나.’ 일어나서부터 아쉬운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왔다. 아침을 먹는데 소화도 잘 되지 않고 기분이 우울했다.
약속시간이 되자 정확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슬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다.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를 타고 3시간여를 날아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닿았다. 독일 국제공항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음식점에서 진열된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으며 점심을 해결했다.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11시간의 비행을 마지막으로 북극체험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난다.
11시간이 정말 빨리 흘렀다. 중간에 기내식을 먹는 1시간여를 제외하고는 거의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 여기는 인천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 현재시각은 21일 13시13분. 우리는 19일에 출발해서 21일 우리나라에 돌아올 때까지 아주 긴 북극 꿈을 꾸었다. 단원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워 작별의 포옹을 하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집을 향해 헤어지지만, 마음은 북극 다산에 남겨두고 왔으며,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나누었다.
이런 뜻 깊은 체험을 하게 된 나는 정말이지 행운아다. 막내로서 일행에 짐이 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면서, 8박9일간 함께 해주신 너무도 좋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끝까지 읽어주신 인천신문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께서 제 글을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소중한 또 하나의 체험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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