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53)씨는 지난 5·31 지방선거에 출마해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정씨의 동네에서 정씨는 ‘6개월짜리 구의원’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정씨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입건돼 있어 곧 기소될 거고, 아마도 유죄 확정 판결로 보궐선거를 해야 될 것이라는 얘기다.

소문을 퍼뜨린 쪽은 선거에서 경합을 벌였던 상대당 후보로 짐작되지만 정씨 입장에서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선관위가 고발한 정씨의 혐의는 우선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산악회 회원들의 생일 날 미화 2달러 짜리(우리 돈 1천900원 상당) 지폐를 기념품으로 준 일이고 또 다른 일들은 주민자치위원회 명의로 동네 야유회와 경로당에 각각 5만원 씩의 찬조금을 내 놓은 일이다. <관련기사 5면>

지금의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데다 사람 좋다는 평판을 받아 온 정씨로서는 두가지 일 모두 해해년년 해오던 일이고 선거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그렇게 하는 게 사람 사는 도리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법으로 가니까 이른바 ‘똑 떨어지는 선거법 위반’이 됐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는 사람들 중에는 정씨처럼 어처구니 없는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것도 죄가 되나 싶은 생각인데, 현행법으로는 명백한 위반이라는 것이다.

바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상의 상시 기부제한 규정. 간단히 말해 정치인이나 혹은 앞으로 선거에 한 번 이라도 나설 요량이 있는 사람은 주변에 일체 기부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규정이다.

기간제한도 없어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의사표시가 있던 바로 그 시점부터다.

민법상 친족 이외에는 경조사에 부조를 해서도 안되고 이웃들에게 한 턱 내는 일은 더더욱 안된다.

형편이 다소 나은 처지라는 이유로 모임이나 행사에 회비 외의 찬조금이나 수건이라도 돌린 경우라면 적발과 동시에 당선 무효 혹은 최소한 전과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5·31 지방선거에서 인천지검에 입건된 선거사범의 총계가 277건. 이 중 기부행위 제한 사범이 모두 121명으로 전체의 43%에 해당된다.

물론 입건된 기부제한 위반 사범의 모두가 억울하지는 않더라도 상당수 사람들은 정씨와 비슷한 처지다.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검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분명 처벌하기 대단히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도 법대로라면 처벌이 불가피하다.

검찰은 실정에 걸맞지 않은 처벌 조항 때문에 검사에게 주어진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재량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정작 선거 사건의 경우 법원의 재정신청 등에 얽혀 어지간하면 기소를 원칙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선관위 등 고발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검찰로선 곤란하니 아예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라는 입장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담겨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의 전기가 되는 경우가 선거 출마인데 죄 같지 않은 죄를 놓고 조사를 받는 쪽이나 조사를 하는 쪽이나 ‘이건 아닌데…’라는 식으로 멍하니 하늘만 보는 격이다.

권혁철기자 micleok@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