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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원칙의 삶, 최재형(崔在亨) 대망론(1)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 겸 정치학박사 장순휘

 

최근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사건 수사의 근거자료를 제공한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하는 뉴스가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이성윤 지검장)에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이사를 지낸 조모 교수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지난 2018년 한수원 이사회에서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하는 과정에 관하여 조 교수가 감사원으로부터 강압조사를 받았는지 등을 3년이 지난 지금 문정권 말기에 최재형 감사원장을 털겠다고 검찰에서 조사한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산자부와 한수원의 관여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며 수사 참고자료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자 11월 친여(親與)시민·환경단체들이 일제히 최재형 감사원장과 감사관들을 상대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무리한 감사를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장을 냈었던 것에 대한 조사이다.

최 감사원장은 작년 10월 20일 감사결과 발표시 “이렇게 감사 저항이 심한 감사는 제가 재임하는 동안에 처음 있는 겁니다.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와서 사실대로 얘기 안 합니다.”라는 올곧은  대국민 메시지를 던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쏟아졌다. 한마디로 ‘탈원전 정책은 문제가 있다’라는 뜻이다. 과거 2018년 감사원장 임명과 관련하여 “감사업무의 직무상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이해”한다는 인터뷰대로 감사원을 원리원칙대로 충실하게 운영해왔다. 관련 일화로 감사원에서 차량2부제 대처편법으로 2대의 원장용 차량을 운용하는 것을 알고 불호령을 내려 당장 시정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위원회 소속 비상근직에 자문료를 월급처럼 편법지급하는 사실을 적발하여 즉각 시정시킨 일도 유명하다. 아니면 아닌 것이 그이다.

감사원(監査院)은 헌법(제4장)에 명시된 헌법기관이고, 감사원장은 제98조 ①항“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으로서 한 마디로 대통령과 불가분의 권력관계로서 잘 보여서 연임(連任)을 한다면 다음 정권에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이해관계가 분명한 최고위직 이다. 그래서 역대 감사원장들이 대통령의 권력과 충돌을 피하고 대통령의 충복(忠僕)으로 지내다가 귀거래사(歸去來辭)한다해도 시비가 있을 수 없다는 세평(世評)도 있다. 왜냐면 동네 면서기(面書記)도 면장(面長)과는 충돌하지 않는 것이 공무원 사회의 ‘잘 먹고 잘 사는 요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재형 감사원장은 헌법이 부여한 책무인 제97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정확하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살아있는 권력(living power)’의 불법적인 행위를 법률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 왔다. 이러한 최 감사원장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이러한 의기(義氣)가 나오는 새삼 이 난세(亂世)에 그의 존재적 탐구가 불가피하다는 국민적 관심이 치열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영웅출현을 기다리는 국민적 열망에서 활화산처럼 터져나오는 대망론(大望論)으로 확산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최재형(崔在亨)은 1956년생으로 66세로 해주 최씨 서운부정공파 36세손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여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秀才)였다. 1981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1983년 육군 법무관으로 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1986년 판사로 임용되었고 판사의 길을 걸었다. 

그의 할아버지 최병규 선생(1909~2008)은 독립운동가로서 강원도 평강출신이다. 춘천고보 제1회로 입학하였다가 3학년 재학 중 순종황제 승하로 상장(喪章)달기에 앞장섰다가 퇴학당했던 애국학생이었다. 만주 해림으로 건너가 조선인거류민단 대표를 맡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왔다가 1947년 공산치하를 피해 월남했으며, 독립유공자로 포상조차도 사양했던 강직한 분이었다. 

그의 아버지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1928~ )은 해사 3기로 임관하여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 갑판사관으로 6.25전쟁에서 대한해협해전 1950년 6월 25일부터 26일까지 북한군 특수부대 제766독립보병연대의 병력을 실은 선박이 부산 인근으로 기습적으로 접근하다가 해군 백두산함에 발견되었다. 해전이 시작되었고, 백두산함은 이를 추적하여 26일 오전 1시경 부산과 쓰시마섬 사이 대한해협에서 북한군 선박을 격침시켰던 최초의 해군 전승이었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 588특수부대원 600여명을 몰살시키는 첫 전과를 올렸다.

에 참전했으며,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무공을 쌓은 호국영웅이다. 최 감사원장의 집안은 병역명문가이기도 하다. 작은 아버지는 해병대 대령, 숙부는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다. 최 원장 자신은 육군 법무관 중위로 전역했으며, 형은 해군 대위, 두 동생은 공군 대위, 석사장교로 국방의무를 다 마친 집안이다. 그리고 입양한 장남은 해군 병장으로 전역하여 병역문제에 있어서는 3대가 완벽한 대한민국의 병역명문가(兵役名門家)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할아버지로부터 4대(代)가 대한민국을 사랑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집안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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