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들 흉상판 선행 시민들보다 몇배로 크게 제작... 주민들 “이게 뭐냐” 분통

계양구 명예의 전당에서 박형우 구청장(왼쪽)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뒤쪽 배경이 명예의 전당 현판인데, 한눈에 봐도 역대 구청장 흉상이 기부자들 현판보다 눈에 더 띈다. ⓒ계양구청

 

최근 계양구가 청사 1층 아트갤러리에 설치한 ‘계양구 명예의 전당’에 대해 주민들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기부 등 선행으로 모범이 된 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했다는 조형물이 ‘역대 구청장 전시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계양구는 지난 25일 기부 등으로 구의 명예를 드높인 주민들을 예우하고 소중한 뜻을 기리기 위해 계양구 명예의 전당 제막식을 열었다.

조성을 위해 들어간 예산은 약 2천만 원으로 계양구 및 유관 기관 중 고액의 장학금 및 기부품을 기탁한 인사들의 이름 및 단체명 등을 새기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1억 원 이상 기부자 및 단체를 대상으로는 ‘아름다운 기부’라는 주제로, 5천만 원 이상 기부시 ‘행복한 나눔’이라는 주제로 현판을 새겼다.

계양구는 다만 역대 구청장들도 지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로 판단하고 명예의 전당에 함께 기록키로 했다.

당시 소식을 전해들은 몇몇 주민들도 그 단계까지는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러나 제막식 이후 명예의 전당을 둘러본 계양구민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계양구가 관내 나눔의 문화 확산 및 기부자 예우 등이 주 목적이었다는 ‘명예의 전당’에는 기부와는 별 관련이 없는 역대 구청장들의 부조흉상이 1억 원 이상 기부자들보다 최소 3배 이상 크게 제작된 데다 색깔도 더 눈에 띄게 조성해 놨기 때문이다.

박형우 현 계양구청장이 명예의 전당 제막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기부하신 분들에게 전 구민을 대표하여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많은 분들의 아름다운 기부와 행복한 나눔에 동참을 바란다”는 코멘트를 감안하면 이는 분명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심지어 별도의 제보를 받은 사진으로 확인해본 바로는 ‘행복한 나눔(5천만 원 이상)’으로 기부된 이름의 현판보다 구청장들의 부조흉상이 9~10배가량 큰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기부자들의 그룹 별 크기를 봐도 구청장들을 모아놓은 면적이 2배 가량 크게 조성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심지어 조성한 모양도 구청장은 흉상 모습이지만 기부자들은 로고 혹은 증명사진 정도를 재현한 정도로 차이가 크다.

또 기부자들을 액수 규모로 잘라 크기를 다르게 만들어 놨다는 점도 시선에 따라서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구청장들의 명판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기부자들의 명판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조성 취지에 완전히 엇나간 결과물인 셈이다.

 

명예의 전당 단체 기념촬영 모습. 배경으로 나온 현판의 차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계양구청

 

계양구청 측은 구청장 임기가 4년으로 기부자에 비해 등재 인원 수가 적기 때문에 명판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상 ‘어불성설’에 가깝다.

명예의 전당을 조성한 관련 부서인 계양구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역대 구청장들은 향후에도 계속 등장할텐데 (향후 구청장들을) 40년 정도 후까지 등재를 하려고 하는데 그에 맞춰서 구획을 정하다보니 칸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그런 논리라면 한정된 공간에서 4년마다 한 번씩 나오는 구청장에 비해 더 많은 수의 기부자가 나온다는 얘기고, 그렇게 되면 기부자들의 구획이 훨씬 더 크고 많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박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이어 “구청장이 기부자들보다 얼마나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기에 적게는 3배서부터 9배 이상으로 크고 흉상 모양으로까지 차별화를 둔 것이냐”는 등으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을 표출하자, “뭐 그런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인천 남동구 등이 계양구보다 앞선 시점에서 명예의 전당이 조성돼 있지만 계양구와 같은 방법으로 전시된 경우는 없다. 일단 지자체장과 기부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묶이기도 힘들고 계양구와 같은 식으로 차이를 둔 경우도 ‘찾기가 어려울 만큼’ 거의 없다.

계양구의 한 주민은 “여러 시선을 다양하게 파악하고 제작에 임했어야 했는데, 소위 ‘철밥통’의 공무원 식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의 표본이 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일각에서는 3선 이후로 더는 출마할 수 없어 퇴임을 앞둔 박형우 계양구청장이 자신의 치적 등을 포장하고 홍보하기 위해 주민 혈세를 무리하게 낭비한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여론의 공감이 없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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