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이진경

 

온 나라를 충격으로 뒤덮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의 근원은 결국 우리 사회 어른들의 책임 문제이다. 책임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이다. 

특히 소중한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할 책임은 어른에게 무한한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등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하고, 참고 절제할 줄 알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낸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른다운 어른의 책임을 다하는 사회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신생아 및 영아가 학대로 인해 사망하고 있는 가장 취약한 집단이라고 발표되고 있으니 그렇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지만 꽃은 고사하고 가장 높은 비율로 아동학대가 발생하고 신고 되는 곳이 부모와 아동의 가정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16개월 영아 정인이는 양부모가 저지른 신체손상에 대해 국과수 부검결과에 따르면 3,800건의 아동피해자 중 제일 심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부검이라는 말은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한결같이 훈계라고 하면서 학대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동학대를 하는 가해자들은 반복적으로 거절당한 경험이 많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으로 대인관계 유지가 힘들다보니 고립되어 고독한 사람이며,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아이를 원하는 것이지만 문제 해결의 효과적 대응을 못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한 특성이 있을지라도 어른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되어, 아이들 앞에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아무 힘없는 아이들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야만 한다.

달군 프라이팬으로 아이를 학대하고 쇠사슬로 묶어놓았던 아이, 여행용 가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이, 초등생 딸을 사망케 한 계부와 친모 사건, 무차별한 폭행과 물고문으로 10살 조카를 살해한 사건, 구미 3살 여아가 빈집에서 사망한 사건 등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며칠 전 또, 7개월 된 딸을 던지고 때려 뇌사에 빠뜨린 결혼이주여성이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있어 개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는 말만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을 처절한 고통으로 사망케 하는 괴물 같은 어른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누군가는 지켜봐야 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폭력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체류 외국인이 지난 2월말 200만여 명이 넘은 한국 사회에서 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구조가 특별한 다문화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는 더 심각하다. 

대가족을 운운하며 지난 시절의 공동체 가족생활이 없어졌다고 현 시점의 개인주의나 다문화사회를 비판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의 책임 회피로 보인다. 마을의 공동 책임이나 공적 제도보다도 앞서 가장 빠른 아동학대근절은 폭력에 반대하는 개인의 인권의식부터의 변화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 소수자 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각 개인의 인권인식 ‘나’부터 발휘하는 책임감이다. 이웃에서 아이학대 사건을 발견하면 신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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