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 겸 경희사이버대 교수 정치학박사 장순휘

 

지난 11일 모 방송사의 ‘미스트롯2’가 종결되면서 최종 결선에서는 ‘붓’이라는 낯선 곡이 양지은 가수에 의하여 불려졌다. 결선에 진출한 7인의 우승후보들이 각자의 ‘인생곡’이라는 애창곡을 부르는 마지막 무대에서 양지은이 부른 노래는 ‘붓’이었다. ‘붓’이라는 곡은 2018년 9월 19일 문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서 천지를 배경을 사진을 찍는 모습과 평양 능라도경기장에서 한 연설을 듣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노래라고 류선우씨(52)는 방송에서 말했다. 

류씨가 남쪽대통령의 연설에 감동을 받아 가사에 넣었다는 부문은 “평양시민여러분! 동포여러분! (중략)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라는 연설의 일부를 가사로 인용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이 연설에 대한 국내외적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취임사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경험하리라는 생각도 못한, 경험 안해도 되는’ 경악스러운 발언이었다.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라고 했다. 70여년 분단의 책임 소재가 무력으로 한반도 공산화의 무력통일을 노린 북한 김일성에게 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산가족의 비극을 만든 자도 김일성인데 ‘헤어져’ 살았다니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차라리 “70년을 싸우며 살았습니다”라고 했다면 진솔한 의미라도 있었을 것이다. ‘평화타령’까지는 봐준다하더라도 ‘새로운 조국’을 운운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사용할 용어가 아닌 것이다. 그의 반헌법적인 ‘새로운 조국’이라는 용어는 과연 무슨 뜻인지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따지고 넘어가지 않은 점도 되짚어볼 때 유감스럽다고 할 것이다. 

분명히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중략)...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후략)”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평화통일의 역사적 사명이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제66조 ②항에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에도 대통령의 책무가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하라고 헌법에 명시했음을 무시하고 ‘새로운 조국’을 감히 언급했다는 것은 반역(反逆)을 의미하지는 않았더라도 반헌법적 망발이 아닌가?

더욱이 제66조 ③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조문대로 임기 5년 중에 ‘평화적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주권을 명시한 『헌법』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반(反)하는 주권의 행사를 적도(敵都)에 가서 임의대로 행사했다는 것은 범법적이다. 특히 ‘새로운 조국’이라는 언급은 청문회를 열어서 따져봐야 했었던 사안으로 사료되는데 왜 그냥 넘어갔는지 의아스럽다.

그런데 이처럼 문제가 많은 연설의 구절을 가지고 류씨가 만든 곡이 ‘붓’이라는 곡이다. 이 곡을 살펴보니 곳곳에 심각한 결함의 가사로 만들어져있다. 곡의 1절 1소절에서 “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에서 ‘그 설움’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면 그건 부적절한 용어이고, 북한이 ‘그 설움’의 주체라면 “누구로부터의 설움이란 말인가? 무슨 설움인가?”에 답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설움’보다도 북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전쟁과 도발위협’을 느끼면 살아왔다. 설움타령할 새도 없이 눈물겨운 세월을 이겨왔던 우리 아닌가?

특히 아연실색(啞然失色) 할 가사는 “칠십년 세월 / 그 까짓게 무슨 대수요”인데 “70년 세월이 그 까짓거라니?”에서 류씨의 소양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1945년 해방 후 남북한의 분단, 1948년 남북한정부수립 그리고 2018년까지 70년 세월이다. 그 과정에서 1950년 6.25 남침전쟁으로 동족상잔의 3년을 보내야 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이 전란을 일으켜서 민족적인 비극을 만들었고, 천만 남북이산가족의 아픔을 남긴 전범이 아닌가? 그리고 전후 3,119건의 무장공비 침투와 국지도발(국방백서 2018)로 편히 쉴 새 없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한 집단이 어디인가? 그런 반민족 집단의 위협을 이겨내고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 입장에서 “그 까짓게 무슨 대수요”라는 가사는 써서는 안될 망언이다.

또한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는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잊고 용서하는 것인데 물론 무조건 화해도 있겠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는 최소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아웅산테러(1983), KAL기 폭파(1987), 천안함 피폭(2010),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 공무원피살(2020) 등 천인공노할 도발행위에 대하여 제대로 사과도 않는 북한을 상대로 어쩌고 어째? 정말 웃기는 가사의 노래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곡을 버젓이 인생곡으로 선택한 양지은 가수의 국민적 정서와 문화적 정체성을 상식선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 입은 의상도 특정정당의 칼라를 선택한 것은 방송계의 어떤 의미로 재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더욱이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 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는 백두산을 내세우며 김씨 세습을 상징하는 용어와 천지 먹물에 붓을 찍어 다시 적어나가겠다는 애매모호한 메타포(metaphor)에서 순수성의 일탈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절 마지막 소절의 “한라산 구름을 화폭삼아 / 한 점 한 점 찍어나가세“는 북한의 지상목표인 한반도 공산화를 염두에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는 아니겠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은 가사이다. 그런데 이 가사처럼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될 리도 없고,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도 협조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최소의 문화예술의 예의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곡은 ‘귀태(鬼胎)’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곡이기에 더 이상 불러서도 안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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