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인천신문 저출산문제연구소장

김민식 소장.

우리나라의 인구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인구는 3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고조선 시대에는 BC 7세기경에 벼가 유입되었으며, 이어서 밀과 콩이 들어왔다. 쌀과 밀, 콩의 유입으로 인하여 식량 생산량이 증가하여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서 치안을 확보하여 인구 증가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새로 유입된 작물과 넓어진 영토 덕분에 삼국시대에는 인구가 650만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보리가 유입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부분의 고구려 영토를 잃었으나 상당기간 전쟁이 없어 인구가 400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 초기에는 후삼국 시대의 전쟁과 거란과의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300만명 정도였으나, 몽고와의 전쟁이 끝난 고려 후기에는 400만명으로 증가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몽고와의 전쟁이 끝나 사회가 안정되었으며 새로운 작물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배추, 수박, 상추, 생강, 목화 등의 작물이 유입된다. 특히, 목화는 서민들이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보온성 옷감으로 추위를 피할 수 있게 해주어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한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로부터 모내기가 도입되어 쌀 생산량이 증가한다.

조선의 세종 시대에는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600만명에 이른다. 농사기술의 보급으로 식량 생산량이 네 배 증가한 덕분이다. 또한 몽고와의 전쟁 이후 200년 이상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1600년경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흉년, 전염병 등으로 인구가 350만명 정도로 감소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치안이 확보되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농업생산량이 크게 감소한다. 임진왜란 동안 인구의 절반이 굶어 죽는데, 이것은 치안이 확보되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후에는 인구가 서서히 증가하여 1800년대에는 600만명 정도로 회복된다. 1605년에 유입된 호박, 1700년대 초에 유입된 옥수수, 1764년에 유입된 고구마 덕분이다. 1824년에 유입된 감자는 1900년경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재배되어 식량 증산에 크게 기여한다. 이들 새로운 작물 덕분에 1911년에는 인구가 1406만으로 증가한다. 이 때 들어온 옥수수와 감자는 현재 식량이 부족한 북한의 주식으로 자리잡아 북한의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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