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느림’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다. 이를 주제로 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작가가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어, 최근에는 그 후속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출판하기까지 했다.

‘느림’은 자연 회귀의 욕구와 단순성에 대한 동경으로까지 나타난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 독서 인구를 불러 모은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여기에 단순성에 대한 책들, 일련의 ‘월든’을 비롯한 소로의 책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다. 이런 담론들은 오늘과 같이 바쁜 우리들 삶에 균형을 가져오게 하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하겠다. 즉 자기성찰의 재료나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어떤 문화적 편협함을 가짐으로써 현실을 회피하려는 반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 세계화, 정보 전쟁, 지식 산업, 무한 경쟁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 느림이나 자연회귀, 단순한 삶은 일상적 삶의 입장에서 보면 순간의 위로는 될지언정, 결국에는 일상에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착목하게 한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과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들 사이의 괴리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가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삶’을 ‘자연 속의 삶’과 등식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삶, 자연 속의 삶을 실현할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래 실상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어쩌면 문화적 사치일 수도 있다.

‘고급스런 권태’, ‘천천히 산책하기’ 이런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다림, 쉼, 침착함, 한가로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서인가. 그래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는 것은 어쩌면 고급스런 권태와 맞물릴 수 있다. 느림이야말로 실천하기에 가장 힘든 일이 아닌가. 우리는 단순히 '느림'이라고 하지만, 이 담론에는 인간 삶의 총체가 반영되어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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