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에다 물을 반쯤 담은 후 나머지 반 컵을 모래로 조심스럽게 채워보자. 컵은 물을 머금은 모래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컵을 들어 올렸다가 조금 강하게 밑으로 내리쳐 보자. 순간 모래는 컵 밑으로 가라앉고 그 위로는 물만이 뜨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토목공학에서는 액상화, 또는 수막화(水膜化) 현상이라고 부른다.

포항의 지진이 있고 난 후에 이 액상화 현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툰 논쟁이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점검단에서 나오는 어정쩡한 견해들도 그렇거니와 그런 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식의 소위 전문가 집단의 반론이 더욱 걱정이다.

아마 점검단 측은 이러한 현상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하려면 동시에 그 대책도 내 놓아야 할 것이고, 그러한 대책에 대한 경험도 없을 것이려니와 뒤를 이을 찬반 논쟁과 소요 경비 논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인천에서 송도에 미디어밸리를 조성한다고 개펄에 의한 갯벌 매립이 시작 될 때부터 그러한 매립 방법의 적정성을 두고 논쟁에 가담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의 앞에서와 같은 지식은, 그 때 나의 논쟁을 도와주었던 국내·외에서 이와 같은 매립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고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수의 토목학자들에게 받은 수업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지식이란 것을 통해 절대의 해답에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절대보다는 상대를 존중하며 절대적으로 긴 시간보다는 상대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짧은 시간을 존중한다. 인간은 그들의 능력으로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만큼 관리하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액상화 논쟁에 있어서도 그렇다. 앞 선 실험의 예가 이 현상의 모든 측면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큼의 물이 어떠한 조건의 모래와 섞였느냐에 따라 실험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고, 그밖에도 현장의 다양한 조건들을 실험실에서 모두 실현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진동이 상하로 작용했는지 좌우로 작용했는지 분수나 배수의 조건은 어떠했는지 하는 현장적인 조건들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난 뒤에도 현재 별 문제없다는 측의 주장대로, 우리의 건축법기준을 지켜서 건물들이 지어졌다면 단단한 지하 암반층에 고정된 말뚝(pile) 덕분에 물이 위로 뜬다고 해도 건축물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수도 있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분출되었던 수량은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표의 변형 정도를 보강하는 데에도 그리 많은 경비가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한 희망사항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면서 아무리 에누리를 해서 계산을 해보아도 걱정이 줄지 않는 곳이 바로 인천의 송도를 비롯한 갯벌 매립지이다. 이곳은 고운 모래와 진흙이 섞인 실트(silt)질의 토양인 개펄로 이루어진 갯벌을, 다시 그 옆의 개펄을 퍼서 매립하고, 그 위를 1~1.5m 정도의 정상 토사로 성토하여 이루어진 땅이다. 당연히 그 지반은 물을 많이 머금은 개펄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개펄은 고무 매트로 만들어진 차수막(遮水膜)과 방조제에 의해 해수와 차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지역의 기반 토양인 개펄은 지하의 암반층과 차수막에 둘러싸인 거대한 한 덩어리의 토괴(土塊)인 셈이다.

당연히 이러한 개펄 덩어리는 함수율(含水率)이 높을수록 유동성이 높아지게 되고 지진파 따위가 충격을 줄 경우 크게 상하 좌우로 흔들릴 수 있다. 그 에너지의 양은 지진의 강도에 비례할 것이지만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유동을 견뎌낼 수 있는 콘크리트 파일이 있을 것인가. 현재 건물들이 그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항타(杭打)된 파일 위에 지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매립을 하면서 개펄이 머금고 있는 물을 배출시키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 개펄 토양 곳곳에 구멍을 뚫고 모래로 가득 채워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조기에 배수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러한 토목 공정을 샌드드레인(sand drain) 공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이루어진 매립지를, 아파트들이 들어가고 난 뒤에 뒤늦게 지하철을 건설하고 공동구를 집어넣느라고 모두 다시 파헤쳤고 바로 그 공사기간에 수차례 대형 홍수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달려가 본 공사현장에서는 쏟아진 우수를 펌핑(pumping)하지 않았고 우수는 그대로 모두 개펄 속으로 스며들었다. 샌드드레인의 효과가 사라진 셈이다.

나는 물론 지금 이 매립지들의 속사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연배수가 이루어졌을지….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천시는 당장이라도 매립지 지반 관리계획을 세우고 일제조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고하는 것일 것이다. 액상화 현상에 의하여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할지라도 포장도로를 비롯한 비건축 공간의 토지는 유리되거나 부등침하할 수 있을 것이고, 개펄의 유동성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홍성 앞바다의 빈번한 지진은 그 강도가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리할 수 있는 만큼은 관리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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