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봄, 인천 강화에서는 현대문명에 맞선 대안 철학을 찾으려는 데 뜻을 같이한 이들이 모였다. 지향점은 교육과 문화를 공동체적으로 일구는 두레다. 대안사상과 그에 따른 생활양식을 익힐 수 있는 방법찾기에 골몰한다.
이후 두 계절을 거치면서 탄생한 것이 ‘마리 교육생활협동조합’이다. 이 공동체 중심에는 황선진 마리학교 교장이 있다. 당시 마리서당 훈장이었던 그가 마리교육생협의 제안자인 것이다.

▲이념형 대안학교를 일구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입각한 교육과 문화 만들기에 협동하자는 것이 출발이었죠. 강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교사와 예술인, 농민 등 50여명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참교육을 어떻게 실천하는 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화에서 태어나 다섯살 때 인천으로 나간 후 불혹을 한참이나 지난 40대 중반이 돼서야 다시 귀환했어요. 이제 고향에서 삶을 살아가자 했습니다.” 강화 마리학교 교정에서 만난 황 교장은 부드러운 웃음으로 맞는다.

마리서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발은 역시나 바른교육이었습니다. 인천과 서울에서 살다 강화로 온 이들이 자녀들을 곧게 교육시킨다는 마음으로 서당을 열었습니다. 대안교육이죠.”

토요일 오후에 모여 한문과 전통 세시풍속을 익히는 것에서 출발했다. 2년이 흐른다. 주 1회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양적·질적인 확대가 필요했다. 2대 훈장을 맡은 황 교장은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늘리는 한편 교육생협 설립을 제창한다. 2001년 봄 일이다.

이후 이들은 다각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일구어 갔다. 농사학교를 열었는가 하면, 생태·예술학교와 공부방, 교육사랑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화 환경농업농민회와 매향제를 개최했고 우리쌀지키기 걷기대회에도 참가했다.

“공동체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마리학교입니다.” 길상면 초지리의 폐교된 길상초등학교 초지분교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2003년 11월 간판을 걸고 정식 개교한다.

“마리학교는 교육이념을 ‘생명이 곧 하늘’ 이라는 데 두었습니다.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데서 출발하죠. 그래서 나는 신성합니다. 이 철학을 몸에 붙이기 위해 닦는 겁니다.”

교육목표 셋을 설정했다. 자본이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개인의 본성을 세우는, 스스로를 살리는 것이 첫째다. 한 걸음 나가 다른 생명의 일에 도움을 주는 대승(大乘)의 삶을 실천한다. 마지막은 세상의 생명과 사물이 하늘의 질서아래 살게하는 것이다.

“우리겨레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활철학과 문화는 각 시대에 맞게 꽃피어 왔죠. 이러한 전통 철학과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자본주의 문명에 맞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마리학교의 추구점 입니다.”

몸과 마음을 닦는 컨텐츠를 교육과정에 녹였다. 가령 화백회의가 있다. 서양식 다수결원칙 의사결정 대신 만인일치를 지향한다. 의견성숙을 위한 방식으로 토론보다는 사회적 명상을 택하는 식이다. 공동체 노동인 율력이라든가, 성년식, 몸살림 8법 등이 교육 이념과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과목들이다.

교육과 더불어 공동체 문화생활도 한 축이다. 정월대보름 놀이부터 화전놀이, 단오놀이, 생명축제까지 ‘생활속에서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실천들이다.

“첫해 입학한 학생들이 올해 3학년이에요. 아이들이 밝아지고 당당해진 것을 느낍니다. 입학 당시 현대 자본주의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고 할까요.” 3년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성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본성에 따른 개성구현 방법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목표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풀었다.

▲문화활동가로의 삶

사춘기를 회고하는 대목에서 “남들보다 길었다”고 황 교장은 말한다. “인생이 무엇인가 고민에 빠져 불면증까지 겪기도 했죠. 문학함네 하고 교내 백일장에서 시를 써 상을 타기도 했는데 그 인연으로 문리대를 선택했습니다.” 인중·제고를 거쳐 1972년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다.

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외치고 한편으로는 서양사조에 대항, 우리전통을 찾고자하는 그 시절 학생운동의 두축을 그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다. 서울대 문화운동을 이끌던 ‘민속가면극 연구회’에 적을 두고 반독재를 외치는 대열의 선봉에 섰다. 결국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제적, 옥살이, 군 입대 수순을 밟는다.

“80년 복학을 하고 그해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 그랬듯이 사회문화운동 활동가로 살았습니다”
서울 아현동에 소극장 ‘애오개’를 열고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노동현장과 농촌에서 탈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민청년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이제 활동 거점을 인천으로 옮긴다.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연)의 초대 집행국장을 거쳐 인천민중연합 초대의장을 맡았다. 세월은 어느덧 90년대 초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생명축제의 힘

“끊임없이 대안을 찾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그것은 줄 곧 사회주의였죠. 변화가 왔습니다. 이때 만난 것이 불교였어요. 5년이 흘러갑니다. 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접한 것이 전통 선가사상입니다. 맥이 단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이 세가지 사상이 내 철학에 함께 있는 겁니다.”

자신의 철학을 발현한 행사가 ‘생명축제’다. 스스로 발의하고 조직위원장으로 행사를 꾸린다. 교육, 문화, 의료, 사상을 망라해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를 걸었다.

이듬해 삶의 터를 강화로 옮기면서 축제 판을 강화로 바꾼다. 함께 만드는 주체도 마리교육생협 공동체가 됐다.

“싹을 띄우고 키우는데 오랜시간이 결렸습니아. 이제 비로소 힘을 축적했죠. 올해는 ‘마차례’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엽니다. 우리겨레 태고적 제천의식과 맥을 같이하지요.”

설명이 이렇다. ‘마차례’는 고대 행해지던 ‘무천’ ‘영고’의 우리말이다. 1년에 한번 치러지던 의식으로 당시 이미 미래 걸어가야할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는 것. 진정한 비움과 채움이 있다. 나누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비우고 다른이의 것을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한 것이 생명축제다.

인터뷰 말미에 인천을 위한 제언을 한마디 불인다.
“시대정신에 따른 철학사상과 문화가 세계 도처에서 배태되는 데 반해 인천은 늦은것 같습니다. 민중운동 전통이 어느곳보다 강한 도시였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현 체제가 주는 혜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이제 새로운 대안철학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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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진은…

▲1952년 강화 출생 ▲인중·제고 졸업 ▲1972년 서울대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사무국장·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중앙위원(1986~1987년) ▲인천민중연합 의장(1988~1992년)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 대표(2001~2004년) ▲현재 마리학교 교장,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 운영위원, 생명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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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학교 연혁

▲1999년 3월 강화도 마리서당 시작, 초대훈장 신창호

▲2000년 2월 2대훈장 황선진, 세시풍속과 풍물을 중심으로 한 대안교육 프로그램 운영

▲2001년 3월9일 (가칭)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 설립준비위원회 구성
8월6∼9일 마리여름학교-생태·예술교실, 제1회 생명문화학교
11월3일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 창립, 마리공부방·교육사랑방 개최

▲2002년 4월22일 마리 교육생활협동조합 농사학교 개시
6월1∼7일 역사기행학교(백두산·고구려 유적지 답사)
6월29일 강화도 환경농업 농민회와 매향제 공동개최
7월말~8월초 여름학교
8월31일∼9월1일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걷기 보은취회 참가

▲2003년 2월15~16 하점 대보름놀이 축제주관
7월11일 마리학원 법인설립 준비모임
9월4일 마리학교 예비교사 모임
10월22일 마리학교터 확정(길상 초 초지분교)
10월25~27 제4회 생명축제

▲2004년 2월23일 개학 및 통과의례
3월 영산 줄다리기 참가
5월 개교기념잔치
8월 여름학교
9월 지리산 종주 체험학습
10월 제5회 생명축제 ‘무천’

▲2005년 2월 정월대보름놀이
3월 학부모와 강화도 걷기 행사
5월 성년식, 모내기
10월 제6회 생명축제 ‘맞두들이’, 추수
11월 스스로하는 여행프로젝트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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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만날사람/ 사진작가 이시우

내가 아는 이시우는…

젊어서부터 문화운동에 눈을 떠 열심인 사람입다. 매사에 성실하고 겸손하다. 현 시대의 아픔을 예술과 과학으로 승화시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랍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서는 치밀하다. 지난해에 한강 하구에서 치러진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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