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에는 정말 야박하게도 연습이라는 것이 없다. 실패한 시험은 다시 보면 되고 잘못 만난 인연은 헤어지고 바로잡으면 되긴 하지만 그 또한 각 단계가 일회의 인생일 뿐 연습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 평생을 모조리 연습이었다 하고 다시 살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삶에는 끊임없이 오류가 쌓이고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이 깊어만 간다.

아마도 그래서 남들의 한번뿐인 삶을 책임지는 역할을 떠안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고금과 동서에 유별한 경계(警戒)가 주어지고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그러한 역할에 대한 연습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니만큼 그들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고 오류를 통제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이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랄 것 없이 이 나라의 많은 공직자들이, 그 직에 취임할 때, 앞 사람의 업무를 넘겨받을 때, 또는 그 직을 떠날 때 내뱉는 말들이 그야말로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가 없다. “미천하고 능력 없는 이 사람이 이 일을 맡아서…” “제가 경험이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것은 어느 전직 대통령이 임기 말에 남긴 “이제 대통령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고 다시 한 번 더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다.

자칭 선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문득 배에 올라와 키(舵)를 잡으면서 승객들을 향해 “나는 항해를 해 본 적도 없고 남다른 능력도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라든지 “이 배가 이렇게까지 많이 망가져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한다면 그 승객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또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럽게 항해를 하던 선장이 다음 항해를 앞두고 “지금까지는 솔직히 내가 선장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데 이제부터 다시 시켜주신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한다면 그 승객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물론 우리의 유별한 겸양이겠거니 할 수도 있고 그들 또한 인간이니만큼 연습이 없는 인생에 어찌 야속함이 없을 것인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남의 삶을, 그것도 무더기로 재단하는 위치에서 저지른 과오가 있었다면 “관용하자”라는 정도로 무마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들의 과오가 일으키는 파장이 다른 갑남을녀의 그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또 다시 누적된 쓰라린 실패의 경험 끝에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후보들의 명단을 대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이 사람들 모두, 대통령 연습만 한 번 하고 말 것은 아닐까하는 경박한 의구심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결국 대통령 연습을 하려한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고금의 역사에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나라는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끝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먹고 사는 경제의 문제와 무엇보다도 직접적으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국방의 문제가 당장 화급하고 자식들 길러내는 문제조차 아직 난제 중의 난제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면서도 동시에 막무가내로 평등을 지향하는 이 나라 대중들의 이해하기 곤란한 욕구를 질서로 풀어내야만 하고, 패거리주의에 찌들어 구제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일그러진 정치판에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집단이기주의로만 발전하는 공조직을 비롯하여 사회적인 조직들이 공공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하고 대중들에게 삶의 재미를 욕 안 먹고 풍요롭게 공급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내일의 삶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그 실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모두 한 번에 제대로 해 낼 수 있는 후보가 지금 우리 앞에 나서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제 누구와 몇 사람의 의도로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거대하다. 변화는 좀 더 정밀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현실적 방법을 가져야 한다. 공약은 크고 많을수록 허황하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대중의 삶에 진정한 한조각의 안녕을 실현시켜 보겠다는 간절한 의지와 고민이 그립다. 변화를 바라더라도 자신은 그러한 변화의 단 한마디의 고리가 되겠다는 철학적인 완숙과 절제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찌 되었건 자신이 그 자리에 가기만하면 된다는, 연습의 의욕에 넘치는 열혈의 청·장년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 연습이나 하려면 나서지 말라할 수도 없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