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의 많은 현상들이 그렇듯이 민주주의 역시 개념의 성립부터 작지 않은 모순을 가지고 태어난 정치제도다. 그 영문표기인 DEMOCRACY의 어원을 따져보면 DEMO(사람들, 민중, 서민)와 CRACY(정치)의 합성어로서 “집합적인 자치통치”의 개념을 표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전사(戰士)공동체의 의사결정 형식에서 비롯하여, 영주, 왕 등 1인 독재체제를 부인하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이와 같은 용어와 개념이 만들어졌지만 현실 속에서 많은 논리적인 충돌을 보여 왔다. “I(나)”가 많이 모이면 “WE(우리)”, 또는 “PEOPLE(사람들, 민중, 국민)”이 되지만, 좀처럼 “우리”, “민중”, “국민”의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전적으로 동시에 동일한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거나 행동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수많은 “나”와 “너”의 의사가 합치하지 않을 때 이러한 정치체제는 작동이 어렵게 된다.

그 심각성은,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국경’이라는 강제구속의 테두리가 없다면 ‘대한민국’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상상을 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제도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구체적인 많은 운영체계를 장착하게 되었고 그 중요한 장치가 “법에 의한 통치”, “다수결의 원칙”, “임기를 가진 대의제(代議制)” 따위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 또한 지극히 인간적일 뿐이다. 법은 세상의 문명과 문화가 바뀌는 데 따라 수없이 바뀌게 마련이고, 다수결은 “존중받아야 하는 소수”, 또는 “천부인권론”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임기가 제한된 대의제 원칙 또한, 종종, 무한권력을 탐하는 “힘”의 제물이 되기도 하고, 표를 창출하는 각종조작 기술을 갖추고 권력을 탐하는 “패거리”들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그 태생적인 모순에 갇혀 만신창이가 된다.

다시 인류는 “집합적인 국민이 단일한 의지의 통치주체가 될 수 있는 (잠정적인) 해법”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소위 여론에 의한 정치이고 여론조사라는 기술이다. 결국 여론이라는 것이 합의의 기준이 되고 국민이라는 집합명사의 의지(意志)가 되어 대중에 의한 자치 통치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만들게 되고, 그 결과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아주 중요한 자치기술이자 권력이 되었다. 비로소 “여론”과 “국민”이 왕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민주주의가 그토록 어렵게 찾아낸 여론조사라는 해법이 아직 무척 미숙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 불완전성은 심심치 않게 부도덕의 문제로 확대되기도 하고 비록 고의가 아니었다할지라도 집단을 오류의 늪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마땅한 통제장치조차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에서 그 위험성은 가중된다.

실제로 여론조사의 현장은, 대략, 표본 추출 방법의 선택 ⇒ 설문의 작성 ⇒ 조사 방법의 선택 ⇒ 조사요원 교육 ⇒ 조사 ⇒ 조사결과의 코딩과 펀칭 ⇒ 전산처리 ⇒ 보정 ⇒ 보고서의 작성 정도로 이루어지는 바, 이 작업은 각 작업단계마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개입하게 마련이고 얼마든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이해가 얽히는 경우에, 그 결과가 보편적인 신뢰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여론조사의 기법들은 몇 가지 필수적인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마치 내 몸의 어느 살점 한 조각을 떼어내어 분석하더라도 똑같은 DNA가 검출되듯이 모든 조사 대상이 되는 주제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반응이 전체 조사대상 집단에 고른 비율로 분포되어 있어야 하고, 응답자는 자신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조사기관의 단계별 종사요원들이 도덕적, 기능적으로 완전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정적으로, 조사에 사용되는 언어는 모호함이나 다중적 의미를 가진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조건들의 동시달성이 가능할 것인가. 특히 어느 누구도 중립적일 수 없는 정치적인 조사에 있어서….

이런 조건 속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응답률 10~20%짜리 1,000명 표본의 정치적인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솔직히 조사회사와 언론의 장삿속이 아닌가. 물론 통계를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야 다양한 변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역시 불완전한 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이제 “될 사람”이라든지 “대세” 따위 여론조사의 허상에 대항하여 내가 가진 모든 이성적인 능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오직 “우리나라의 이익”만을 위해 나의 선택을 지켜야할 때다.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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