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나는, 내가 지지하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후보가 당선되면 지방자치의 행정이 무언가 조금씩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모든 시민들이 궁금해 하던 멀쩡한 보도블록의 빈번한 교체 사업 같은 것들은 좀 사라지고, 대형 건설공사로만 내닫는 도시개발사업은, 조금쯤 현실적이고 지역친화적인 쪽으로 바뀌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그러한 기대는 마치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번번이 배반당해 왔다. 그런 세월이 20여년을 넘게 이어지다보니 너무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나 자신의 성정에 대한 반성도 생기고, 그들의 줄기차게 대를 잇는 요지부동의 “동일성(同一性)”을 상대로 이제는 좌절이나 분노 따위를 넘어 차라리 경외하기에 이르렀다. 왜 나는 “정치인 다 똑같지 뭐…”라는 시중의 대중적인 통찰에 그렇게도 진작 참여하지를 못했었는지…. 나는 정말로 이쯤에서 나의 생각들을 멈추고 희망 따위…, 그런 유치한 언어들은 현명하게 내려 놓아야하는 것일까? 그런데…, 아무튼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정치에서 이성은 사라지고 도를 넘는 방황은 이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하나 고질병이 되어버렸는가 싶다. 이제 이 땅의 정치는 나날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영화(榮華)를 위한, 정치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이 땅의 많은 갑남을녀들은 비록 사석의 푸념일망정 차라리 국회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든지 오히려 과거 군부 독재의 시절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너무도 쉽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속에서도 근자 중앙정치의 파행을 틈타서 터져 나오는 각급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소위 대권 행보를 지켜보노라면 그 도를 넘는 권력지향과 자기도취, 파렴치함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속성이 본래 손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나누어주는 것이기는 하다. 그것을 우아하게 “참여”라고도 부른다. 그 속에서 도학자연(道學者然)하고 팔짱끼고 뒤로 물러앉아 있어서는 여간한 행운이 아니고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지방정치의 계단이 중앙정치로 이어져야 한다는 소위 민주제도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도 없다. 결국 그들의 나서는 행위가 아무리 역겹더라도 달리 어쩔 수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좋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는 피할 수 없는 유일한 정치구조라면 그 행로를 걷겠다는 이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이고, 그 행보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들이 거쳐 가는 지방자치라는 것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라도 한 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도 좀 더 큰 다음의 권력에 집착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은 법률이 지방자치법이다. 이 법의 제8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처리의 기본원칙이 열거되어 있고 제9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범위가 6개 분야에 걸쳐서 아주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다시 제11조에는 “국가사무의 처리제한”이라는 규정에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업무로 7개 항목의 사업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한 법조문들을 이 자리에 모두 옮길 수 없거니와, 요약한다면 외교, 국방, 사법 등의 사무를 비롯해서 대규모의 경제성장과 발전사업 따위는 지방자치단체가 담임할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학문적으로나 법체계상 당연하게 보이는 이러한 법률적인 업무의 구획이 현실 속에서 어이없이 무력해진다는 데에 있다.

대개 우리 자치단체의 장들은 하나의 도시와 지역을 넘어서 나라의 비전을 바꾸고 세계의 중심을 만든다는 둥 자신의 고유업무보다는 제한된 국가급의 사업에 목숨을 건다. 많이 따져볼 것도 없이 고유업무를 수행하는 정도로서는 다음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큰 통”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법 제9조는 지방자치단체가 무엇을 해주어야 그 주민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막힘없이 돌아가는, 깨끗한 도시에서 삶의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가를 잘 정리해 보여주고 있다. 좀 더 큰 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무엇이 시민의 행복의 조건인가를 진지하게 사색하고 실천적인 경험을 축적할 영역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국민들은 이데올로기의 실현이나 정의, 민족 따위 거대 담론보다도 이와 같이 국민의 삶의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원론적인 사고와 경험이 축적된 지도자를 고대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부탁하거니와 지방자치법 제9조로 돌아가라. 도시의 길거리가 너무 많이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데부터 현실의 파악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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