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예전부터 수도권 시민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가 많다.

그 중 하나가 월미도인데 지금도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1920년대 월미도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해수탕이 있어 ‘인천은 몰라도 월미도는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관광지였다.

조탕(潮湯)이라 불리는 해수탕은 일반적인 바닷물이 아니라, 지하 암반층에서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이를 끓여 목욕물로 사용했는데, 이 암반수에는 각종 미네랄과 염화나트륨 등이 포함돼 있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미도가 관광지가 된 것은 인천항 갑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1918년 인천 내항에 도크(dock)를 건설하고 한강에서 흘러드는 급한 물살을 막기 위해 북성지구에서 약 1㎞에 달하는 제방을 쌓았다. 이 제방이 놓인 후 철도국은 소형 해수풀과 조탕을 만들고 이곳을 임해유원지로 조성하면서 월미도 전역을 풍치지구로 지정해 관광지로 개발했다.

월미도 조탕에는 숙박과 휴게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서구식 무대장치가 마련된 연무장도 있어 당시로서는 첨단의 시설을 자랑하는 휴양시설이었다. 원산 송도원, 부산 해운대 등의 잘

 알려진 휴양지를 제치고 월미도는 당대 최고의 명소였다.

이후에 민간업체가 경영하면서 해변가에 대형 풀이 증설되고, 밀물 때에는 마치 바다에 뜬 모양의 용궁각과 3층 목조건물의 빈(濱)호텔이 건립되어 많은 행락객이 찾기도 했다. 당시 붉은 지붕과 서구식 외관을 자랑하던 조탕 건물, 그리고 매혹적인 불빛을 선사하는 월미도의 야경은 놓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광복 후, 월미도관광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옛 명성을 되찾고자 했지만, 별 성과를 보지 못한 채 6·25전쟁으로 공터로 변했다가 모래부두와 공장 등이 세워지자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워졌다. 1980년대 말에 월미도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해군기지로 사용되던 곳은 공원으로 단장돼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지금, 옛 조탕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월미문화의 거리에 해수 족욕탕이 조성돼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이 있었던 월미도가 과거 전국 최고의 명소라는 명성이 현재에도 이어져 수도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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