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 경영학에서 유행처럼 주요 강의 주제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점가에는 리더십의 제목을 단 서적들이 넘쳐났고 언론 매체에서도 세종 리더십, 이순신 리더십, 심지어 히딩크 리더십까지 늘어놓으며 마치 세상의 모든 문제는 리더십만 바로서면 되는 것처럼 수선을 떨었다.

당시 나는 강의를 위해 이런 자료들을 수집해야 했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바른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에 끝이 있을까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넓은 교양, 포용력, 단호함, 솔선수범, 근면성, 헌신적 자세, 사랑의 정신, 신중함, 전문성, 예지력까지….

요컨대 우리사회가 우리의 리더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무결점의 완벽한 인간이고 전능한 인간인 셈이다. 리더로 불리는 입장에 선 사람들로서는 실로 버겁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로부터 그들이 촌보(寸步)라도 벗어날 때에는 가차 없이 비난의 홍수가 퍼부어질 것이고 그가 이끌어야하는 사회의 폭이 넓을수록 그러한 채찍질은 더욱 가혹해지기 마련이다. 연일 쏟아지는 매체들의 트집 잡는 보도 내용들과 국회에서 벌어지는 청문회의 현장이 그러한 실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실로 이해하기 어렵게도 이러한 리더의 위치는 거의 모두 자신들의 선택과 지원,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이러한 리더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서 순전히 열렬한 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니라면, 그러한 리더의 자리가 보장하는 어떤 만족할 만한 급부에 대한 기대 때문에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된다.

운명적인 선택이라는 경우의 수도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순신이라면 모를까 거의 있기 어려운 얘기다. 아마 현실적으로는 대개 그러한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복합되어서 그러한 자리들에 오르게 되는 것이 상례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그 자리에 올랐든지 간에 사회가 요구하는 전인격적인 인간이 되기는 대체로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들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의 괴리는 그들이 그러한 자리에 오르는 순간부터 거의 숙명적인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자리”에는 언제나 경쟁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한 경쟁자는 항상 리더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실수와 멸망을 조장하기 위해 골몰한다.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이러한 모순된 경쟁관계는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적인 리더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전력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지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경쟁자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선제적으로 유권자와 접촉을 강화하고, 일단 사단이 발생하고 나면 거의 결사적으로 변명하여야 한다.

틈만 나면 유권자들을 만나서 자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훌륭한 리더인지를 보여 주어야 하고 기자들을 만나 자신을 설명하고 선전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일 것 같은 업적과 품위를 만들기도 해야 하고 막무가내로 부지런한 모습도 보여야 한다. 그러니 세상이 다 알만한 유명 인사들과 쉴 새 없이 만나야 하고 동서남북의 각종 현장에 달려가야 한다. 바쁘다. 하루가 24시간, 1년이 12달이라는 것이 야속하다 할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불가의 8정도(八正道)에서와 같이 “바른 사유(正思惟)가 있고 나서야 바르게 정진(正精進)할 수 있다”라는 깨달음의 순서나 유가(儒家)의 대학에서 보이는 “안정한 뒤라야 능히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생각을 깊이 하고 난 뒤라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安而后에 能慮하며 慮而后에 能得이니라)”라는 바른 수양의 순서에 모두 어긋나는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한들 깊은 사색이 없고서야 바른 방안을 찾을 수 없다는 가르침에 잘못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이토록 24시간이 모자라게 바쁘기만 한 우리의 리더들은 도대체 언제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초능력자가 아니라는 것이야 앞에서 이미 다룬 이야기이겠거니와 그들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언제나 바른 생각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장황한 설명을 생략하고, 내 생각에 리더는 가장 마지막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현명한 답안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출발부터 자신이 담당한 모든 일에 정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이러한 주문은 더욱 절실하다.

마치 자신이 무슨 불세출의 영웅들이라도 되는 양 가장 먼저 나서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 내고 간단(間斷)도 없이 표밭을 누비며 교언영색에 빠져 사는 리더들에게서 우리 사회가 얻을 것은 많지 않다.

간간이 듣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희망을 북돋우며, 그 현명함으로 모두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사려 깊은 언어들을 리더들은 간단없이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멸망을 노리는 경쟁자들을 제압해야 하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팔로어(follower)들을 설득해야 한다.

모름지기 말은 머리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며 어떠한 천재의 경우라도 머리는 시간을 먹고 현명해 지는 것이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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