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문상(問喪)을 갔다가 익숙하게 지내온 한 국회의원과 겸상을 하게 되었다. 마침 국회의원선거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어서 농 삼아 인사를 건넸다.
 
“그래 그렇게 소원하시던 국회의원이 되셨으니 요즘 얼마나 사는 재미가 나십니까?” 웃자고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사뭇 진지했다.

“재미는요. 얼마나 바쁜지 아주 정신이 없어요. 피곤이 쌓이는데…, 이거 못할 짓이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정말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을 하기도 해서 “그럼 ooo의원님은 다음번에는 절대 다시 안 나오신다고 하더라 라고 내가 소문을 내야 되겠네요.”라고 받아 주었더니 순간 당황하여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온 그의 답이 재미있다.

“그래도 한 번은 더 한다고 하던데요?” 얼마나 당황을 했으면 남의 이야기하듯 둘러댄 말이 이렇게 단도직입일 것인가.

어떤 국회의원을 지낸 지역의 선배는 “국회의원하면 그렇게 좋은 게 많습니까?”라는 나의 물음에 “글쎄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라고 회한이 짙게 어린 설명 아닌 설명을 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아무리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도 언제까지나 다시 또 가지고 싶고 한 번 잃어버리면 평생의 한이 되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인가 보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고도의 위압적인 언사가 아무렇지 않은 말처럼 그들의 입에서 쉽게 굴러 나오는 것일 것이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졸지에 달라지는 공적 대우의 가지 수를 놓고 서른세 가지가 달라진다는 말부터 백 가지도 넘는다는 주장까지, 그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한 추측도 분분하다. 그 정확한 것이야 그야 말로 안 해본 사람은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누리는 신분 상승의 영예가 대단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상식으로 생각을 해보더라도 출퇴근에 시달릴 이유도 없고 업무 감사를 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움직임을 나랏돈으로 쓰면 되고 이젠 경조사비에 시달릴 일도, 혼인 주례 자리에 불려다닐 일 조차 없다. 어디나 가면 상석이고 어른인 것은 물론 어디에서든지 발언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권력이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그들의 특권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그들에게는 왜 연임제한 규정이 없는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난스럽게도 대통령을 단임으로까지 단단하게 묶어 놓은 아마도 지구상 유일한 나라다. 도지사도 시장도 군수도 모두 연임 제한의 규정으로 묶여 있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에게만 이러한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의원들이 행정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따라서 장기 연임으로 인한 부패나 권력 독점의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경향이 세계적으로 일반적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현상은 이러한 형식논리와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들 중 다수는 분명히 부패하고 있고 지역의 정치에서 끊임없이 독재적 아성의 구축을 기도하고 있으며 선수(選數)를 근거로 권력화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더욱이 그들은 공직선거법을 비롯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를 날로 강화하는 데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다.

무릇 민주국가의 온갖 제도의 설정 목적은 결국 국익의 실현에 있다. 당연하게도 국회의원에 대한 연임이 제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제도가 어떻게 국익을 증가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한 논리적인 입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거니와 아무리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정리해 보아도 실익보다는 폐해만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연임을 제한했을 때, 계파정치의 종식, 신인 발굴 기회의 확대, 정치 과잉의 폐해 감소, 부패의 감소, 지방정치의 활성화…따위 긍정적인 효과에 눈길이 간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정치 체제를 실험한 나라이다. 대통령도 단임으로 묶을 수 있는 나라라면 국회의원의 연임을 제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목에 방울을 매달 리는 없을 것이고, 앞으로 필연적으로 불어 닥칠 개헌 논쟁 속에서 이 주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도록 무언가 하기는 해야 할 텐데 …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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