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망언은 죄다 일본의 정치인들의 입에서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대한민국의 국회 의사당에서 정상적인 머리로 수용하기 힘든 망언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이 한가하게 국감이나 하고 있을 때냐?”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이런 말에 선뜻 무엇이 잘못인지를 감지하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면, 그들의 이성이 정신 차리기 힘든 정치권의 부조리한 언어 사용에 이미 상당히 마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국회의원의 역할은 대한민국의 법을 만드는 일이고 국정을 감사하는 일이다. 그밖에 정부의 결정에 대한 동의권이나 행정과 사법부의 요인(要人)들에 대한 탄핵소추권 등이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 두 가지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이 지금은 한가하게 국정감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국회가 일을 팽개친 지가 언제부터인지 기억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지를 잊어버렸을 법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배울 만큼 배웠을 것이 분명한 국회의원의 입에서 국정감사를 한가할 때하는 것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국정감사보다 더 시급한, 한가할 수 없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설사 그들이 생각하는 이 나라의 가장 시급한 일이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이라면 국회의 권능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성실하고 전문적인 국정감사일 것이 아닌가.

야당의 비상대책위 대표와 그 국회의원들이 광화문에 늘어서서 들고 서 있는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는 피켓의 구호를 접하고는 정말로 할 말을 찾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이 법을 제정하는 방법은 정부나 국회의원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가 심의와 의결을 통해서 제정하는 것뿐이다. 그 밖의 방법은 없다.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발동하지 않는 한 입법의 권능은 국회 고유의 것이다.
 
그런데 유가족이 동의해야 법을 제정할 수 있다면 그 때 그 유가족의 법률적인 지위는 무엇인가. 그들이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고…, 그들은 이제 국회를 넘어서는 국회의 상위 결재기관이거나 초법기관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이제는 수사권과 기소권 논쟁도 넘어서 국회의 입법권 자체를 유가족에게 넘기라는 것인가? 이제 앞으로 이 나라는 대규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 유가족들이 법을 제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애당초 양당의 원내대표가 모여 두 차례의 합의를 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 정도의 망언은 가히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모욕이다. 그러한 글이 적힌 피켓을 어떻게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 세계의 보도매체가 주목하는 광화문 거리에 들고 나설 수 있다는 말인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어 이제 살만큼 산다는 나라에서 이렇게 일 년에도 몇 번씩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길바닥 시위를 벌이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따로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러한 망언들을 쏟아내는 그들의 정신적인 구조의 본색은 무엇이고, 그들이 노리는 진짜 목표는 무엇인 것일까.

물론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현재 이 나라의 공권력에 의해 최대한의 물질과 인력을 집중하여 진행 중에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어느 누구라도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결과를 예단하거나 그러한 노력의 진행을 방해하여서는 안 되고, 국회에는 공권력의 그러한 진행을 엄정하게 감시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국가의 권위가 확립되도록 역할을 다해야 할 헌법적인 의무가 있다.
 
만에 하나라도 이러한 망언들이 또 다시 대선불복(大選不服)에 그 속내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최대의 국기문란 행위라는 비난을 비켜갈 방법이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시중의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하고 시위를 선동^조장한다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길거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온갖 고통을 감당하며 염출한 세금으로 국회라는 조직을 유지시키는 이유는 이 사회에 발생하는 모든 갈등과 대립을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압축하고 다수결에 의해 종결하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그러한 원칙을 거부하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질 않은가.

특별법을 제정하든 무슨 짓을 하든 그 결과를 놓고 벌이게 될 이전투구와, 마침내 보상의 문제까지 진행될 때에 이 사회가 넘어가야할 첩첩산중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 답답하다. 그러한 혼란을 즐기고 또 다시 수많은 망언들을 쏟아낼 것이 분명한 국회의원들을 위해 나는 또 세금 낼 걱정을 해야 한다. 이 무슨 부조리란 말인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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