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중에 언론에 가장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말이 “국민은 현명했다”라는 것이다. 어느 쪽에도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들고 있고 심지어 황금분할이라는 최상급의 칭송까지 따라 붙는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러한 판단들이 정말로 옳다면 정말로 다행이다. “국민들이 현명하다.” 이 나라를 위하여 이 보다 더 큰 다행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현명하다는 데 이 나라에 무슨 걱정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분석들이 내게는 무척 한가하게만 들린다. 정말로 국민들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까. 그들이 그러한 현명한 분할을 하기 위하여 어디에 따로 모여 앉아서 작전회의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러한 결과를 내기 위한 특별한 집단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통하여 갈라선 양 진영이 불공대천의 원수처럼 대립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러한 분할은 이 사회의 완벽한 분열을 상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절반의 투표율에 절반의 득표율로 선택된 당선자들은 결국 1/4의 대표들인 셈이고 결국 이 사회는 소수 독재라는 반민주적인 행태와 불안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나라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52:48이라는 소위 ‘절묘’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화합할 수 없는 이 사회의 결정적인 분열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여실히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의 역사는 분열하는 사회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끝없이 보여주고 있다. 멀리 중국의 역대 왕조와 로마제국까지 올라 갈 것도 없이 지구상에 명멸한 모든 왕조와 정권의 몰락이 사회적 분열에 그 원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예외가 없다.
 
한마디로 사회의 분열은 그 사회가 몰락하고 있다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가까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멕시코, 필리핀의 도전과 좌절에 그 증거가 명백하고 우리 조선의 말기가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으로 뼈저리다.

하나의 사회가 분열할 때 이를 막는 가장 좋은 도구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영웅적이고 신통한 리더십의 등장이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Join, or die)”라는 간결한 외침으로 새로운 미합중국의 탄생을 이끈 벤자민 플랭클린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피와 땀과 눈물의 리더십으로 극복한 처칠, 오로지 조국의 자유라는 이념으로 이탈리아의 독립을 이루어낸 가리발디, 터키의 혹독한 전환기를 이끌었던 케말 파샤의 리더십, 아니, 온 나라가 적의 침략 앞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분오열할 때에 백성과 병사들을 오로지 하나의 힘으로 뭉쳐내었던 이순신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준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의 인격에 의지하는 리더십의 은총은 역사에서 드물다. 어차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개인주의적 지향이 강한 두 개의 이데올로기는 영웅의 등장을 허용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제 인간 사회는 제도에 의지하고 다수 인격의 집합에 의한 역사의 지속과 번영을 시도하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오지 못할 것이 틀림없는 ‘고도(Godot)’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분열이 혁명을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 혁명을 주도할 중심마저 상실한 사회가, 붕괴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도에 대한 신사적인 신뢰의 회복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마저 고도(高度)의 합의를 전제로 하여야 가능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이제 이 사회는 민주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기초의 회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다수결’과 ‘임기’의 존중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 권력에 대한 질시와 증오를 그 탄생의 원인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완벽한 인격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사회적 불안정을 다수결의 원칙으로, 탐욕의 횡포를 임기제에 의한 권력의 순환으로 차단한다. 당연하게도 이를 부인하는 어떠한 행태도 반민주적인 것이다.

일단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고 그를 헌법의 권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라. 현행범이 아닌 모든 정치인은 임기가 끝난 후 표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안 된다면 모든 것을 국민 투표에 맡기든지. 어차피 입장 바뀌어 자리를 바꿔보았자 똑 같을 사람들 아닌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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