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민 중에서 관청에 볼일이 생겼을 때 그 관청에 어떤 아는 사람이 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었을 때는? 자동차 접촉 사고라도 생겨서 경찰서 사고처리반에 가야할 때는?

이번에는 반대로, 그런 연줄로 누군가 내가 선 줄을 새치기하고 나보다 우대를 받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범연하게 지나치고 말아버릴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이 “아마 별로 없을 걸”이라면 이 사회는 전체적으로 너무 부조리하지 않은가.

오늘도 대한민국의 도로 위에서는 지천으로 교통법규 위반이 자행되고 상거래에서는 “관행”에 의한 지하거래가 수두룩하게 오고간다. 금수강산에는 오늘도 마구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산림 감시원들은 제 자리에 있지 않다. 돈과 돈을 만드는 권력이 이 사회의 가치와 권위를 독점해 가고 있다.

이 나라에서 옳고 그른 것은 어느 패거리의 말이며 행위이냐에 따라 평가될 뿐 진실이나 사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을 점령하기 위해서다. 2014년 대한민국의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아닌가? 물론 나도 그 속의 일원이다.

세월호 사건이, 슬픔과 반성의 영역을 넘어 궤도를 일탈하는 느낌이다.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의 화살이 이 나라 정부와 그중에서도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싶다.

이 사건은 자연재해나 전쟁이 아니고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대형 해상교통사고이고 사건 발생의 본질은 부패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는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아주 오랫동안 누적되고 확장되어 온 것이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관련하여 우리 중 누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어느 정당, 어느 대통령, 어느 내각이 있었더라면 이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가. 그 처리 또한 달랐을 것인가. 달랐던 적이 있었는가.

이제 이 사회는 이 사건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해상교통사고와 민?관 합작의 부패라는 시각 하에 엄정하게 법률적인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러고 난 뒤에 이 사건의 배경이 된 우리 사회 전반의 부패와 부조리, 불합리에 대하여는 일전(一戰)을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싸움은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야 하며, 사회 전반의 쇄신이어야 하고, 혁명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또 다른, 정치인들의 “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패거리들이 전리품을 얻기 위해 벌이는 행진이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인 결단은 법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또는 이상적으로도 대한민국 정부가 중심에 서야하는 것이다.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정부와 국민 간에 각오를 공유하는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시각에서 이 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의 선정적이고 무절제한 보도와 사회 일각의 정부와 국민사이의 이간질은 이 사회에 대한 최악의 위협 요소다.

최적의 처리 방안의 모색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때에 상처를 들쑤시고 자극만을 극대화하는 어떠한 선동도 기성의 부패보다도 더욱 위험한 반국익적인 장애인 것이다.

최신의 장비와 기술로도 마음대로 어찌 해보기 어려운 상황에다가 온갖 입과 눈이 초고감도의 메가폰과 현미경처럼 감시하고, 단 한마디의 격려는 없이 혹독한 질책만이 준비된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상황을 휘어잡고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초인적인 지휘관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이를 보도한 어느 언론의 어느 보도진이, 정부를 비판하는 어느 정치인이, 대통령을 매도하는 어느 시민단체들이 이 사건을 현장에서 지휘하였다면 과연 결과는 달랐을 것인가.

이 지구상 어딘 가에서는 오늘도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에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우리와 같이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책임인 것이 명백했던 9ㆍ11테러 당시 미국민은 우리와 같이 대응하지 않았고, 최신형의 핵잠수함과 함께 전 승조원을 잃었을 때의 러시아 국민도, 독일에서 대형 철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그러한 사건을 수습한 그 나라 관리들에게도 많은 실수가 있었고 정부도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정부와 국민이 척을 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재난을 겪을수록 사회는 뭉쳐야 하고 더욱 성숙해야 한다. 그런 국가와 민족만이 번영하고 살아남았다.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절제된 아픔과 슬픔만이 좀 더 나은 내일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숙고해야 할 때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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