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승선자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는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을 다 안다. 그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표준이고 상식이다. 배가 출항하려면 선장이 승선 인원과 선적 화물을 파악하고 감독관청과 최종 확인을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세월호’는 몇 사람을 태웠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까지 보도 매체에 오르내리는 실종자의 숫자는 과연 정확한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그냥 마구잡이로 태운 사람들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고물선에 시설 증축을 하고, 일반적으로 정년을 훌쩍 넘긴 선장을 채용하고, 신출내기 항해사가 가장 난코스에서 조타를 하게 된 사연, 훈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선원들, 화물 선적 규정 하나를 지키지 않은 것이 분명한 선적 노무팀, 두 말 할 것도 없이 총체적으로 나사가 빠져버린 것이 분명한 감독기관의 조직체계, 이 판에서조차 얼굴 팔기에 바쁜 수준미달의 정치인들과 SNS의 협잡꾼들까지…, 이걸 그냥 안전불감증의 사회라고 1차원적으로 부를 수는 없다.

입체적으로 나사가 풀린 사회의 민낯인 것이고 나는 그 밑바탕에서 뿌리 깊은 부패의 악취를 맡는다. 이 모든 일들이 부정한 권력과 금전의 거래 위에서 형성되어 이 사회에 만연한 소위 ‘관례’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비보를 접하면서 수년 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인천시 결산검사위원으로 활동하던 때, 나는 송도 신도시의 방조제 건설공사를 점검하였고, 설계도와 준공검사서를 확인하고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설게도 대로라면 이를 맞추어 깎은 견치석(犬齒石)들로 물샐틈없이 마무리 되어 있어야 하는 방조제의 외벽이 문학산의 암반을 발파하여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의 암석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당연하게 엄청난 크기의 공극(孔隙:틈, 구멍)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틈으로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나는, 이대로 방치한다면 바다에 해일이 발생할 경우 파압(波壓)에 의해 작은 돌멩이들이 총알과 같은 위력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돌멩이들이 매립지 내부의 개흙을 보호하고 있는 고무로 된 차수막(遮水膜)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토목전공 교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바닷물에 의해 개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고 매립지 전체가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검사 보고서에 담았고 재시공을 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달았고, 몇 몇 매체가 이를 취재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뜻밖이었다. 현장의 모습과 전문가 증언까지를 녹취한 TV 뉴스 자료는 끝내 방영되지 않았고 한 지방일간지에 보도가 되었지만 의회와 시당국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다음 해 나는 이 문제를 다시 조사하였고 무척 어렵게 시공사의 공사 책임 임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항변은 초지일관하였다. 이러한 시공은 대한민국 공사판의 ‘관행’이고 지금에 와서 이런 대규모 공사를 재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시공사와 감독공무원 모두를 형사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동원하고서야 공극을 모조리 콘크리트로 메우는 형태의 재시공을 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지만 지금도 송도신도시의 서측 해변 7㎞ 끝단 방조제는 누더기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사후관리가 되고 있는지를 나는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채 또 다른 ‘세월호’에 승선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시공사 임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송도 신도시뿐만 아니라 이 도시와 이 나라 어느 곳에 얼마나 많은 ‘관례’가 만든 세월호의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묻혀있는 개펄, 가스가 새고 나서도 어떤 조치가 되었는지를 알 수 없는 가스저장탱크들, 철근이 부족한 채로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 그런 모든 것에 무심한 관리자들…, 이들이 모두 언젠가 별안간 우리를 또 다른 ‘세월호’의 승선자로 만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박대통령이 진도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맞닥뜨리고 있는 비정상의 거대한 실체를 현실적으로 파악하기를 빈다. 이 기회에 진실로 자신들이 뿌리 깊게 심어 놓은 부조리와 비리의 실체에 스스로 소스라칠 줄이라도 아는 정치인들…, 아니 우리 모두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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