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은 정말로 적절한 강화의 별명이다. 강화의 어느 지점이라도 땅거죽 한 꺼풀만 걷어내면 역사의 파편들이 쏟아진다.

아득한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역사의 중심에서 강화가 비켜섰던 적은 없다. 아마도 경주나 평양보다도 한민족이 정성을 다해 아끼고 품어야할 땅이 강화다. 그럼에도 오늘 강화가 받고 있는 대접을 보고 있자면 어찌 이 민족이, 이 나라가, 이 도시가 이럴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우리는, 강화가 “역사를 잃어버린 땅”이라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주목하지 않는다기보다도 오히려 이런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대체로 낯설다.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찾아내어 시민과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소위 전문가와 이 도시의 리더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강화에는 역사로부터 지워진 세 개의 사적(史蹟)이 있다. 대한민국 사적 제130호 삼랑산성, 제136호 참성단, 제137호 강화 지석묘가 그것이다. 이러한 사적과 연결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우리의 국사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학교용 교과서가 됐든 시중의 교양용 역사 서적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실로 이상하지 않은가.

사적은 있는데 역사는 없다? 물론 우리의 역사에 이런 기형적인 현상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고,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산하 조선역사편수회가 중심이 되어 진행한 우리 역사 지우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1)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2)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며, 3)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에 일본의 사적, 인물,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半日本人)으로 만드는 요결이다”라는 조선총독부 강령으로 집약되는 일제의 한민족 역사 지우기는 매우 집요한 것이어서 아직도 그 폐해가 대한민국의 사학계 전반을 뒤덮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는 우리의 역사가 그들의 역사보다 선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민족의 역사에서 삼한(三韓)시대 이전의 고대사를 모두 선사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렸고 이러한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우리 사학계는 고대사 연구에서 지금까지 분쟁만을 거듭하고 있다. 고고학적 연구도 마찬가지로 아무 속 시원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언필칭 남북분단과 중국의 비협조를 핑계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한 이유는 아직도 식민사관의 뒤를 잇는 패거리와 민족사학계의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학계의 이런 언어도단의 파국과 전 국가적인 무관심 속에서 강화의 역사는 아직도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에 적은 강화의 세 사적은 그 진실성에 의심이 없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인돌은 고고학계에서 신석기말과 청동기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는 고고학적인 문화재이다. 참성단과 삼랑산성도 단군의 설화와 연결되어 있어 이 또한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다.

동시대의, 천제를 지내는 시설과 대표적인 피란과 방어전투시설인 산성, 부족장의 무덤인 고인돌을 갖춘 강화에 어째서 최소한 청동기 부족국가의 역사가 성립하지 않을 것인가. 그 각각의 규모 또한 당시 인구가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왜 우리는 이들로부터 역사를 불러내지 못하는가.

인천의 앞바다에는 150개의 도서가 지호지간의 거리에 줄을 잇고 있고 백령도와 영종도, 무의도, 영흥도 등지에서 선사시대의 유구(遺構)와 청동기의 또 다른 유적인 패총이 발견되고 있다.

정족산에 무려 2,400미터의 규모로 건설된 삼랑산성은 대규모 적의 공격을 예상하지 않고는 지어야 할 이유가 없는 당시로서는 초대형의 토목공사다. 강화에 해상왕국의 수도가 존재했을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외면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전 세계가, 없는 역사조차 만들어 팔고 있는 세상이다. 그곳에 길이나 뚫겠다고 하는, 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이 도시 지도자들의 공허한 구호가 그저 허허롭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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