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사건을 하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많지만 최근에 처리한 양육비청구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들 부부는 이혼을 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아내는 이미 70살이 다되어 가는 상황에서 몸은 병들고 당장 살아가기가 힘들어서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청구를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내담자는 참으로 팔자가 기구한 여인이었는데, 그 녀의 남편은 이웃여자와 바람이 나서 허구헌 날 외박을 하는 것도 부족해서, 급기야는 아내를 내쫒으려고 날마다 아내에게 트집을 잡고 들볶아 대면서 ‘당장 집을 나가라’고 다그쳤다. 당시에 그녀는 위로 세 아이를 낳고 막내를 임신 중이었는데, 남편의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당시에 5살이던 셋째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쫒겨나와서는 남의 집 허드렛 일에서 부터 막노동판에서 일용직 잡부 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뱃속에 있던 아이와 셋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였고, 남편을 원망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이들의 학령기가 되어서 호적등본을 떼어보니,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한 것으로 되어 있었고, 남편은 이미 다른 여성과 재혼신고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 녀는 남편과 이혼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법원에 알아보았더니, 남편은 그녀를 내쫓고는 그녀가 가출하였다고 허위신고를 하고는 재판상이혼을 청구했다.

남편은 공시송달을 통해서 그 녀도 모르게 이혼판결을 받아서 이혼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혔지만 이미 남이 된 사람이니 따질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두었다.

그 후에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뜻밖에도 호적등본에서 아이들의 아빠 이름이 지워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고 법원에 확인을 해보았더니 남편은 아내와 허위로 이혼신고를 한 것도 부족해서, 아내가 키우고 있는 두 자녀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면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는 친생자관계확인등을 할 경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유전자감식을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의 행방이 불명하다는 취지와 인우보증인들을 세워서 역시 공시송달로 아이들과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내서 제적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의 호적만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통해서 아이들을 다시 남편의 호적에 입적시켰다.

이러한 기구한 사연을 가진 그녀는 나이도 많은 데다가 남편과 살면서 당한 구타의 후유증 때문인지 온몸이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 당장 생활비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남편을 상대로 과거 양육비를 한 자녀당 일억원씩을 청구하였다.

이 사건에서 두 가지 쟁점이 관건이 되었다. 이미 30살이 넘어버린 아이들의 과거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 가의 시효완성여부에 관한 문제와 남편도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니 각자가 두 아이 씩을 양육하고 있는 경우에 아내 쪽에서만 남편을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할 수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예측대로 남편 쪽에서도 아내의 과거 양육비청구 소송에 맞대응해서 남편이 양육한 두 자녀에 대한 동액의 양육비청구를 하였다. 결국 양쪽에서 각 아이마다 일억원씩의 과거 양육비를 청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판결에서 법원은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에게, 아내가 양육한 막내아이의 20년간의 양육비로 총 7천만원을, 셋째 아이의 양육비로는 15년간 총 5천250만원을 각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 이유는, ‘성년의 자녀를 양육한 자가 공동 양육의무자인 다른 쪽 상대방에 대하여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하는 권리는 당초에는 기본적으로 친족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인정되는 하나의 추상적인 법적 지위이다.

이러한 법적 지위가 당사자의 협의 또는 당해 양육비의 내용 등을 재량적·형성적으로 정하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전환됨으로써 비로소 보다 뚜렷하게 독립한 재산적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양육자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상태에서는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보아서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한 법원은 ‘남편 쪽에서도 두 자녀를 양육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처가 그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였던 것은, 남편에게 쫓겨나서 더 이상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욱이 남편이 아내와 사이에 공시송달로서 이혼판결을 받는 가하면, 자녀들을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까지 받아서 자녀들을 호적에서 삭제까지 해버린 경우라면 그녀는 그녀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녀를 양육하지 못한 것이므로 이러한 사안에서 까지 그 녀에게 자녀의 양육비책임을 지우게 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돈이 그 녀의 30여년간의 고생과 억울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어려웠던 세월이 되새겨지는지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멈벅이 되면서도 연신 감사합니다를 되뇌이고 있었다. /안귀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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