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사기열전 권61 백이열전의 말미에 장탄식을 남겼다. 도척(盜?)과 같이 평생을 포악무도한 짓만 일삼은 인간은 천하를 횡행하고 천수를 누렸는가 하면 백이(伯夷)나 안연(顔淵)과 같이 인덕을 쌓고 행실이 깨끗한 사람들은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재화(災禍)를 당하며 요절하거니와 이런 것이 천도라고 한다면 그 천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인류역사는 옳고 그름 따지는 현상의 연속

인류가 사회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동서양의 모든 성현과 석학들이 진선미와 정의를 논하였지만 최근 우리나라에 정의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는 언제나 허무하다. 아마도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현상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인간이 꿈꾸는 만인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이렇게 멀기만 하고, 한 생명이 탄생부터 소멸까지 도처에 잠복한 생명의 위협 요인을 뚫고 온전하게 한 영육을 부지한다는 것조차 전 지구적으로 아직까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간의 안녕이라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크리스털 유리잔보다도 깨어지기 쉬운 것이 아니던가. 아마도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에 매달리고 역설적으로 사회에 더욱 집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실은 실증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인류 어느 곳의 어느 시대 역사라고 해도 인류가 안녕했던 적은 없다. 그래서 인류가 아직도 찾아 헤매는 것이 안녕이고 구원(救援)이다. 어느 절세의 권력이라도 한순간의 세월을 안녕한 적이 없었고 마르지 않는 부(富)를 가졌다고 해서 영육의 안녕이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야 그렇다 치고, 스톡홀름 밤거리에서 소매치기와 담배, 술의 암매상(暗賣商)을 만나보고, 오슬로의 밤거리에 가득한 수입된 동남아 출신 주부들에게, 스위스 베른의 중앙역 대합실에서 하루 종일 춤을 추는 마약에 절은 청춘들에게, 암스테르담 중앙역 광장 원형 벤치에서 하루를 허송하는 눈알이 텅비어버린 군상들에게 “안녕들 하시냐?” 라고 물어보라.

인류 유사 이래 인간의 삶이 이와 같고 안녕한 삶의 답을 찾는 방황이 이와 같다. 그런데 이제 바야흐로 그 답을 대한민국의 선동가들이 내게 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내게 안녕하시냐고 묻는다. 안녕하시지 않으면 왜 바라보고만 있고 앉아만 있느냐고 묻는다. 그들에게는 답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단어만 바뀌었을 뿐 선동은 익숙하고 식상

그럴까. 그런데 사용되는 단어가 바뀌었을 뿐 사실 이러한 선동은 언제부턴가 내게 너무 익숙하고 식상하다. 인류 역사적으로 그 보다 더한 선동은 수도 없이 널렸고 국내의 경험으로도 이미 식상한 정도를 넘어섰다.

나는 이 짧은 인생 속에서 그러한 선동의 결과까지를 이미 여러 번 경험하였고 그 허무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선동가들이 오히려 침묵하는 다수보다 얼마나 염치가 없는 인격들인지도 충분히 경험하였다. 그들은 내게 세상보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지금 사회에 부족한 것은 순리와 상식

그들의 주장대로 현 대통령이 물러나고 문재인 전 낙선자가 대통령이 되고 나꼼수를 비롯해 현 정권에 대해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인사들이 국정을 또 다시 접수한다면, 국정원이 무기력해진다면, 노조가 항상 승리한다면, 해군기지를 만들지 않고 송전탑을 세우지 않는다면, 과연 세상은 안녕해질 것인가. 과연 그렇겠는가. 국회가 제도를 거부하고 길바닥으로 나서고 또 다시 불법 시위대들이 광화문을 휩쓸면 이 나라는 안녕을 기약하게 된단 말인가.

배워야 할 때에 배우지 않고, 생각해야 할 때에 생각하지 않으며, 성찰하여야 할 때에 성찰하지 않고 오로지 선동하기를 일삼는 구성원들이 넘쳐날 때 그 사회는 위태롭다.

나의 책임은 존재하지 않고 사회가 모든 책임을 지라는 외침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나는 안녕할 수 없다. 지금 이 사회에 부족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순리와 상식이며 겸양과 절제가 아닌가. 도대체 공권력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사회를 어떻게 독재사회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나라가 지금 법과 제도 소득수준 무엇에 있어서도 국민들이 구순하기만 하다면 충분히 안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렇게 믿을 때라야 이 사회는 안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아침 무릎을 꿇고 새해가 그것을 확인시켜주기를 고대한다.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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