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친형제와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죠.”

재일학도의용군 인천·경기 지부장 김재생(77)씨.

김씨의 본 국적은 일본이다.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며칠만에 서울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재일동포이긴 했지만 몸 속에는 분명히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데 한반도에서 터진 전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만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일본에 주둔해 있던 미군에 지원해 현해탄을 건넜지요.”

미군에 배속된 재일학도의용군은 모두 642명. 김씨는 이중 제1진에 포함돼 1950년 9월15일에 시작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미군들과 함께 인천에 첫발을 내디뎠다.

“상륙작전을 계기로 인천과 인연이 시작됐어요. 이제는 인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휴전 후 김씨는 조국에서 한 평생을 살기로 다짐하고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인천에서 삶의 터를 마련하기 위해 안해본 일 없다고 한다.

공사장에서 일용직 근로자와 청소직 등 여러일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환경업체를 운영하면서 생긴 수익금의 일부를 함께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위해 쓰고 있다.

“조국을 위해 함께 싸운 동지들의 후손들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그는 재일학도의용군 인천지회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인천지회 동지들의 어려움에 항상 안타까워 하고 있다.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고는 있지만, 어려운 생활 형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자식들 교육까지 해야하는 부담이 큰 걸 알기에 작지만 전우들을 위해 조금씩 나누고 있어요.”

김씨는 지난 전쟁에서 전우들이 조국을 위해 바친 피와 땀만큼 조국에서도 이들의 행적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길 원했다.

그는 “제 자식과도 같은 전우들의 후손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함께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게 도리인 것 같아요. 작은 손길이지만 끝까지 동지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송효창기자 jyhc@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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